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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많은 韓, 빅테크 유해 콘텐츠 규제엔 손놓나 [사설]

입력 | 2023-12-12 23:54:00


빅테크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유해 콘텐츠로부터 아동, 청소년을 보호하려는 각국의 규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전미교육협회를 비롯한 미국의 200여 단체는 최근 상원 원내대표에게 서한을 보내 ‘아동 온라인 안전법’ 통과를 촉구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유튜브와 틱톡에 불법·유해 콘텐츠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할 세부 방안 제출을 요구했고, 영국은 9월 ‘온라인 안전법’을 제정해 시행에 들어갔다.

최근 각종 소셜미디어에는 인종과 젠더 혐오, 외모지상주의 등을 조장하는 이른바 ‘신종 유해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기존 규제 대상인 음란물이나 폭력물 외에 불법 콘텐츠의 경계를 애매하게 넘나드는 것들로,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왜곡된 고정관념을 심어주거나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아직 판단력이 떨어지고 모방 심리가 강한 아동과 청소년들에게는 특히 문제가 될 수 있는 콘텐츠들이다.

디지털 강국인 한국이 이런 문제에 서둘러 대응하지 않을 경우 그 폐해 또한 빠르게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관련 규제 논의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입법권자들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해외의 경우 어린이의 소셜미디어 사용 시간을 제한하거나 ‘13세 이하’ 식으로 규정된 특정 연령대 아동의 사용을 아예 금지하는 규제까지 추진하고 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등 주요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는 빅테크 기업들에 유해 콘텐츠 관리 책임을 지우고 이를 어겼을 경우 처벌 수위를 높이는 흐름이 뚜렷하다.

콘텐츠 규제를 기업의 자체 규율에만 맡겨 놓는 것은 한계가 있다. 신종 유해 콘텐츠의 개념과 책임 범위, 처벌 수위, 기준 등이 마련돼 있지 않으면 빅테크들은 장삿속만 앞세운 플랫폼 운영 방식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규제 왕국’이라는 한국이 막상 필요한 규제에는 손 놓고 있다는 말까지 들어서야 되겠는가. 플랫폼 기업들의 관리·감독 책임을 강화하고, 국내 규제를 피해 가는 해외 빅테크 회사들에 대해서는 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 적용 방식 등을 참고해 실질적인 규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들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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