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은둔청년 54만명… 46% “일상복귀 실패해 재고립”

입력 | 2023-12-14 03:00:00

고립 경험 19~39세 8874명 첫 조사
이유는 “취업 실패” “관계 어려움” 순
75% “자살 생각”… 일반청년의 33배
정부, 내년 1341억 투입 상담 등 지원




“저는 그냥 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인 것 같아요. 내가 무능하고 그냥 (사회에서) 필요가 없으니까… 죽고 싶어도 (부모님께) 불효하는 것 같아서 죽지도 못하겠어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로 불리는 한 고립·은둔 청년이 올 7, 8월 정부의 온라인 실태조사에서 남긴 심경이다. 국내 고립·은둔 청년 가운데 이 청년처럼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4명 중 3명꼴로 나타났다. 상당수는 사회 복귀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이전의 고립된 상태로 되돌아갔다.

정부는 내년에 1341억 원을 투입해 고립·은둔 청년의 조기 발견과 심리상담, 취업 지원을 도울 예정이다.

● 절반은 일상 복귀 실패 후 다시 고립

보건복지부는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고립·은둔 청년은 제한된 공간에서만 생활하는 등 사회활동이 거의 없거나 위급할 때 기댈 사람이 없는 이들을 뜻한다. 정부가 이들에게 초점을 두고 조사를 벌이거나 범부처 지원책을 마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고립·은둔 청년은 약 54만 명이고,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복지부 추산 연간 약 7조 원으로 추정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7, 8월 고립·은둔 경험이 있는 만 19∼39세 8874명을 조사한 결과 6360명(75.4%)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일반 청년 조사에서 ‘자살 생각’ 응답률이 2.3%였던 것에 비하면 약 33배다. 고립·은둔을 시작한 나이대는 20대(60.5%)와 10대(23.8%)가 가장 많았고, 주된 이유는 취업 실패(24.1%)와 대인관계 어려움(23.5%)이었다. 한 청년은 “휴대전화가 울리면 받기가 무섭다”고 했다.

응답자 중 80.8%는 현재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고 했고, 67.2%는 실제로 일상 복귀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45.6%는 일상 복귀에 실패하고 다시 사회와 단절됐다.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정보가 없고, 도움을 청할 경제적 심리적 여유가 없어서였다.

한 응답자는 “상담이든 뭐든 받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보다가 포기했다”고 했다. 조사를 맡은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고립·은둔 시간이 길수록 정신 건강이 악화하고 사회 단절이 심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비대면 자가 진단 이후 상담-취업 등 원스톱 지원

정부는 내년 하반기(7∼12월) 중 고립·은둔 청년이 언제든 비대면으로 자가 진단과 도움 요청을 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고, 고위험군을 선별해 서울을 포함한 4개 지역에 시범 설치하는 ‘청년미래센터’로 연결하기로 했다. 청년미래센터에서는 ‘3끼 먹기 챌린지’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자조 모임과 방문 심리상담, 탈(脫)고립·은둔 성공 청년과의 멘토링, 가족관계 회복 등을 지원한다. 고립·은둔 청년 상당수가 도움 청할 곳을 찾는 것부터 어려워하는 점을 고려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파악된 고위험군 1903명이 우선 지원 대상이 된다.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이 고립·은둔으로 악화하지 않도록 청년 카페를 만드는 등 10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청년 성장 프로젝트’를 시범 운영한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주기적으로 집 밖으로 나오게 유도하는 전략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고립·은둔 청년이 일상을 회복하면 다양한 사회문제를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며 “다양한 복지정책으로 이들을 폭넓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