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으로 정권 장악하는 ‘쿠데타’ 한국-미얀마-수단-브라질 등 식민지 역사 겪은 나라서 발생 민주주의 경험해보지 못해 군부 독재 거부감 크지 않아
최근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인기입니다. 1979년 있었던 12·12 군사 쿠데타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에서는 ‘하나회’라는 군대 내 사조직에 가담한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쿠데타(Coup d’État)란 프랑스어로 ‘나라(État)의(de) 타격(coup)’이라는 의미로, 국가 권력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차지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자신들의 무력을 바탕으로 불법적으로 정권을 잡은 행위가 바로 대표적인 쿠데타의 사례입니다.
군인에 의한 쿠데타는 우리나라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닙니다. 오늘의 세계 지리 이야기는 이런 군사 쿠데타와 군인에 의한 독재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지역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쿠데타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은 어디이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함께 알아봅시다.
● 군부 독재가 여전히 심각한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내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입니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 지배와 독립의 과정에서 열강들의 편의대로 그어진 국경선이 현지 주민들의 관계와 사정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기에 한 국가 내에 사이가 나쁜 민족이 섞여 생활하게 되고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내전으로 인해 무력을 가진 군인 세력이 통치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뿌리내리지 못하고 힘을 가진 기존의 군부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군부가 등장하면 쿠데타로 정권이 교체됩니다. 사하라 사막 이남으로 대서양의 기니부터 인도양의 수단까지 쿠데타가 자주 발생하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의 띠를 이루고 있어서 지정학적 신조어로 ‘쿠데타 벨트’라고 부릅니다. 쿠데타 벨트에 속한 국가들은 평균 5번 정도의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이들 중 수단은 1956년 독립 이후 무려 15번의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죽고 다치는 일은 셀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 미얀마 등 아시아서도 쿠데타
아시아의 각 국가도 쿠데타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미얀마에서는 2021년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이에 저항하는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미얀마는 현재도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와 국경을 접한 태국 역시 전통적으로 군부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따라서 태국에서는 아프리카의 수단보다 더 많은 19차례의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태국의 쿠데타는 조금 독특합니다. 태국은 전통적인 불교 국가이고 입헌 군주제의 정치제도하에 국왕이 존재하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태국 국왕은 불교에서 믿는 부처의 화신이라고 믿어집니다.
● 냉전의 결과물로 발생한 라틴아메리카 쿠데타
라틴아메리카 역시 군부 독재와 쿠데타가 빈번했던 지역입니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식민 지배가 끝나고 원주민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산주의 세력이 대거 활약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세력은 라틴아메리카와 마주하고 있는 앵글로아메리카의 미국이었습니다. 20세기 중후반은 미국을 필두로 한 자본주의 세력과 당시 소련을 필두로 한 공산주의 세력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던 냉전의 시기였습니다. 미국은 본인들의 후방이나 다름없는 라틴아메리카에 공산주의 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막고자 라틴아메리카에 지정학적으로 개입했습니다. 미국이 선택한 방법은 공산주의 세력을 몰아낼 수 있는 우파 군부 세력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1964년 브라질에서는 군인 출신의 카스텔루 브랑쿠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1973년 칠레에서는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1976년 아르헨티나에서는 육군 사령관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니카라과에서는 좌파 정권에 반대하는 콘트라 반군이 게릴라전을 일으켰습니다. 이들 배후에는 모두 미국이 있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공산주의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을 막겠다는 지정학적 판단을 한 것이었지만 이들 쿠데타와 독재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가 탄압받고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것 또한 자명한 진실입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20세기 중후반 미국이 라틴아메리카 군사 쿠데타와 독재를 지원했다는 문서들을 공개하며 본인들의 과거 잘못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첨병을 자칭해 온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를 탄압한 사례를 보면 지정학에서는 옳고 그름보다 국익이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쿠데타가 횡행하는 지역의 공통점
전 세계적으로 군인에 의한 군사 쿠데타가 횡행하는 지역은 다양합니다. 그리고 일종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제국주의 열강들로부터 식민 지배를 당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식민 통치 기간 무력으로 억압당해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지역 주민들은 식민 지배 이후 이어진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와 독재를 익숙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또 식민 지배로 인해 가난해진 주민들에게 군인들의 신속한 추진력과 경제 부흥책은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12·12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한 신군부 독재 시기에 대외적인 호황으로 경제 성장 속도가 빨랐던 만큼 당시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칠레에서도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독재했던 시기를 국민의 36%는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고 하며 이는 칠레의 사회적 갈등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정작 이러한 배경의 근원이 된 유럽의 선진국들은 현대사회에 와서 군부에 의한 쿠데타나 독재를 경험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유럽 시민들이 민주주의 혜택을 보며 선진화된 사회를 이룩하는 동안 유럽 열강이 뿌린 식민 지배의 씨앗은 여러 지역에 군부 쿠데타와 독재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것이 냉혹한 지정학의 진실이고 세계 지리의 역설입니다.
안민호 마포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