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사라진 저녁’ 권정민 작가 “우리가 한 일들의 실체와 대면 비인간의 시선으로 인간 그릴 때 숨겨진 모습-이중성 드러나”
권정민 작가의 그림책 ‘사라진 저녁’에서 돼지가 아파트로 온 장면. 돼지 몸통엔 ‘요리할 시간이 없어서요. 직접 해 드세요!’라고 적힌 메모가 붙어 있다. 창비 제공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일도 타인의 노동력을 빌려야만 하는 손쉬운 선택을 합니다. 그 손쉬운 선택들이 쌓여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점점 더 무감각해지는 우리 모습을 들춰보고 싶었어요. 아파트에 배달된 살아 있는 돼지는, 내가 한 일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대면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책은 야생동물과 식물처럼 말 못 하는 존재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특징이다. 첫 그림책 ‘지혜로운…’은 도심에서 살아남은 멧돼지가 다른 멧돼지들에게 생존 전략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멧돼지의 모습과 함께, ‘먹을 수 있을 때 충분히 먹어 둘 것’이라고 말하는 멧돼지의 말은 야생동물과 공존할 수 없는 도시 환경을 비춘다.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문학동네·2019년)에선 식물의 시선으로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들여다본다.
“모두에게 각자 입장이 있지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는 한쪽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체로 힘이 센 인간의 이야기만 들리는 게 현실이죠. 그럴 때 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 존재의 목소리를 상상합니다. 결국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에 대해 말할 때 인간의 숨겨진 모습, 이중적 모습이 드러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