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게 거래한 은행이라 믿었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상품이라고 해 평생 모은 돈 6억6000만원을 넣었는데…”(서울 역삼동, 75세 투자자).
“3년 전 암 3기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와 병원 앞에 있는 은행 출장소를 통해 투자하게 됐다. 집사려고 모아둔 전재산을 집값이 조금 진정될 때까지만 넣어두려 했다. 그렇게 거의 전재산을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했다. 이 ELS가 손실 나면 은행이 망하는 거라고 했다.”(경기 판교, 56세 투자자).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포함하는 ELS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거나 손실 위기에 처한 약 100명의 투자자들이 15일 오후 1시 금융감독원 본원 앞에 모였다.
이날 영상 5도까지 급격히 떨어진 기온에 비까지 왔음에도 금감원 앞은 검은 비옷을 입은 투자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주최 측에 따르면 집회 참석 의사를 밝혀온 투자자는 총 97명, 부부나 가족 동반으로 온 투자자까지 합치면 100명이 좀 넘는 투자자가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집회를 진행한 김태진씨는 “피해 사례를 들어보니 공통된 의문점이 있다. 마치 불법 다단계 회사의 비슷한 매뉴얼을 보고 읽은 것처럼 응대하고 1등급 초고위험 상품을 안전한 은행 상품으로 둔갑해 팔았다는 것”이라며 “이것이 불완전판매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물음을 던졌다.
제도가 작동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금융위원회는 2019년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우히나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내용은 숙려제도 강화와 설명의무, 투자자 대신 기재하는 행위, 투자자 성향 분류 조작, 불완전판매 행위 제재, 즉 판매 절차를 강화하고 관리 감독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제도만 만들어놓고 관리 감독은 금융당국은 현 사태가 발생할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고 말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홍콩H지수 기초 ELS 가입자 수는 현재 판매잔액 기준 15만4000여명, 이 중 6조4000억원이 60대 이상 고령자에게 팔렸다. 90대 이상 초고령층에게 판매한 잔액도 100억원에 육박한다.
집회에 나온 한 65세 투자자는 “나이 들어서 잘 이해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지수는 잘 설명도 안해주고 ‘원금 손실 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 없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하다’란 말로만 판매했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은행업계에 따르면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H지수 연계 ELS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은행에서만 약 13조6000억원 규모다.
ELS는 특정 주가지수에 연동된 증권으로, 만기까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약속된 수익률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