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이제는 ‘가상 아이돌’ 시대 2, 3차원 가상 캐릭터 아이돌… 방송국 음악방송에 출연하고 오프라인 단독 콘서트 개최… 빌보드 차트 상위권 오르기도 사생활 문제로 속 썩일 걱정 없고… 시간-장소 구애 없는 소통도 강점… 팬들 “본체보다 퍼포먼스에 열광”
《‘가상 아이돌’에 열광하는 MZ세대
“실제 사람이 아니라도 사랑을 듬뿍 줄 순 있어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 아이돌이 온·오프라인에서 한류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올랐다. 가상 아이돌에 열광하는 팬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5인조 가상 아이돌 보이그룹 ‘플레이브’의 팬인 대학생 이연우 씨(21)는 1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플레이브 멤버들은 모두 2차원(2D) 가상 캐릭터로, 만화 주인공 같은 수려한 외모를 갖고 있다.
이 씨는 “플레이브를 사랑하는 다른 팬들과 함께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올 6월부터 지인과 의기투합해 데뷔 300일 기념 일일카페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2명으로 시작된 추진단은 어느덧 6명이 됐다. 그림 실력이 좋은 ‘금손’ 팬들을 30명 가까이 모아 멤버들의 모습을 그린 포스터, 키링, 포토카드 등 자체 제작 굿즈도 직접 준비했다. 모두 다음 달 초 여는 카페에 방문하는 팬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가상 아이돌 그룹의 인기가 온·오프라인으로 확장되며 새로운 한류의 주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팬들은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콘서트를 찾아 화면에서 존재하는 아이돌에게 열광하고, 멤버들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 씨처럼 일일카페를 열기도 한다. 특히 디지털 소통에 친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팬들은 “실존하는 현실 아이돌과 다를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 오프라인까지 확장되는 ‘가상 아이돌’ 인기
가상 아이돌 그룹은 실제 인물 대신 ‘가상 멤버’들이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이다. 과거에는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최근에는 방송국 음악방송이나 라디오에 출연하는가 하면, 단독 콘서트까지 개최하는 등 오프라인으로도 활동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가상 아이돌 캐릭터 모습은 다양하다. 실제 사람과 유사한 3차원(3D) 캐릭터로 활동하기도 하고, 플레이브처럼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하게 잘생긴 2차원 캐릭터도 있다. 나이, 생일, MBTI, 혈액형 등 캐릭터마다 세세한 특징을 갖고 있어 실제 인물 같은 느낌을 준다.
가상 캐릭터지만 인기는 실제 아이돌 그룹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올 초 가상 아이돌 최초로 방송국 음악방송에 데뷔한 걸그룹 ‘메이브’는 지난달 30일 컴백과 동시에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을 장식했다.
이들의 앨범 ‘와츠 마이 네임’은 미국, 영국, 스위스, 호주 등 4개국 K팝 인기 차트에 진입했으며, 뮤직비디오 역시 공개한 지 2주 만에 유튜브 조회수 1000만 회를 넘었다. 메이브를 주인공으로 한 웹툰도 제작됐다.
가상 아이돌 그룹은 실제 아이돌 그룹처럼 팬들과의 라이브 방송도 진행한다. 12일 진행된 컴백 기념 특별 라이브 방송에서 플레이브 멤버들은 팬들에게 손하트를 보내며 실시간 쌍방향 소통을 했다. 2시간가량 진행된 방송에서 신곡을 라이브로 선보였고, 쏟아지는 실시간 채팅 메시지에 답하기도 했다. 이날 방송의 최대 동시 접속자 수는 2만7000여 명에 달했다.
팬들 역시 멤버들의 굿즈를 제작, 구입하거나 일일카페를 차리며 오프라인에서 팬심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대전 중구의 한 애니메이션 전문 카페에선 플레이브 멤버 ‘하민’의 생일 기념 행사가 열려 전국에서 팬들이 모였다. 올 3월에도 부산 지하철 서면역과 양주역에 이세계아이돌 멤버 ‘릴파’ 팬들이 마련한 생일 광고가 내걸렸다.
올 9월 플레이브 콘서트를 보러 갔다는 직장인 이민경 씨(26)는 “멤버들 모습이 담긴 부채를 받기 위해 더운 날씨에 한 시간 동안 줄을 서 기다렸다”며 “내년 단독 콘서트도 꼭 보러 갈 것”이라고 했다.
● “속 썩일 일 없는 게 최대 장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온라인 소통에 적극적이라는 점도 가상 아이돌의 장점으로 꼽힌다. 이세계아이돌 팬인 이명훈 씨(24)는 “온라인 활동이 중심인 가상 아이돌 특성상 시간과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덕질’을 할 수 있다”며 “유튜브나 실시간 채팅 등 온라인 활동은 가상 아이돌 쪽이 훨씬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 캐릭터 뒤 ‘본체’ 궁금해하는 건 금기
팬들 사이에선 캐릭터 뒤에 있는 본체를 궁금해하는 건 금기시된다. 소속사도 본체에 대해선 일절 함구하고 있다. 최근 가상 아이돌 세계에 입문했다는 직장인 이모 씨(26)는 “최애(가장 아끼는) 멤버의 본체는 중요하지 않다”며 “중요한 것은 멤버들이 무대에서 보이는 퍼포먼스”라고 전했다. 일부 팬은 본체를 알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색 알약을 먹는 것처럼 굳이 진실과 마주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가상 아이돌의 인기가 모션 캡처 등 그래픽 기술의 발달, 온라인 플랫폼의 정착 등의 요인 덕분에 가능해졌다고 분석한다.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라이브 방송을 하고 실시간 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 가상 아이돌이 현실 아이돌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가상 아이돌은 현실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볼거리를 제공하는 등 새로운 영역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며 “앞으로 특화된 영역을 개척해가며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