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체중 조절로 힘들어했던 박장순 삼성생명 감독은 요즘은 잘 먹고, 열심히 운동을 해 선수 시절 체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박장순 감독 제공
안 그래도 힘든 레슬링 선수들을 더 괴롭히는 건 ‘체중 조절’이다. 힘을 쓸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 그런데 체중 종목인 레슬링은 잘 먹으면서도 자기 체급의 체중을 정확히 맞춰야 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박장순 감독이 상대 선수를 공격하고 있다. 경기 중 선명하게 보이는 복근이 인상적이다. 동아일보 DB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세계레슬링연맹으로부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박장순 감독. 동아일보 DB
그런데 서울에 올라오니 피자, 치킨 등을 평소 보지 못했던 음식들이 차고 넘쳤다. 박 감독은 “얼마나 맛있는 게 많던지 밥을 세 공기씩 먹었다. 몸무게가 10kg 이상 늘고, 키도 10cm이상 컸다. 잠자고 있던 몸속의 힘이 살아나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엔 68kg급으로 출전했다. 당시 그는 앞만 보고 뛰었다. 대회 전 어느 날 선수촌에서 그는 러닝으로 몸을 풀고 있는데 옆에 한 흑인 선수가 같이 뛰고 있더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수는 당대 최고의 육상 스타 칼 루이스(미국)였다. 그는 “사실 올림픽이 그렇게 큰 대회인 줄 몰랐다. 칼 루이스가 누군지도 몰랐다. 매트 위에선 상대 선수가 누구든 힘과 패기로 밀어붙였다”고 했다.
은메달을 딴 후 그는 남자 74kg급 경기를 보러 갔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화려한 기술로 매트를 평정하던 케네스 먼데이(미국)가 금메달을 따는 걸 눈앞에서 본 것이다. 마음 속에선 “저 선수와 한번 붙어보고 싶다”는 불길이 솟아올랐다.
박장순 감독이 소속팀 삼성생명 선수들과 포즈를 취했다. 레슬링 선수들은 좋은 식단과 꾸준한 단련으로 군살없는 몸매를 갖고 있다. 박장순 감독 제공
첫 대회가 열린 러시아에서 그는 체중 조절에 애를 먹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살이 빠지지 않았다. 절망한 그는 화장실에서 자신의 코를 주먹으로 때려 코피를 냈다. 그렇게 단 1g이라도 줄여보려 한 것이다. 이 모습을 본 당시 코치는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그냥 운동장을 뛰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 시베리아는 밤에 영하 40도까지 내려갔다. 흐르는 쌍코피를 휴지로 틀어막고 운동장을 뛰고 또 뛰었다. 그만큼 간절했고, 그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어떻게든 체중을 맞춘 그는 그 대회 금메달을 땄다. 우승을 한 건 좋았지만 1m도 넘는 대형 트로피를 받은 게 또 다른 문제였다. 이후 프랑스와 터키, 미국 등을 돌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동을 거듭할 때마다 트로피는 한두 군데씩 부서지기 시작했고, 한국에 오기 전 그는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트로피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해 베이징 아시아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후 그는 체급을 74kg급으로 올렸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박장순 감독. 동아일보 DB
74kg급에서 만난 ‘우상’ 케네스 먼데이와의 대결은 연전연패였다. 첫 만남에서 폴로 패했다. 이후에도 좀처럼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고무적이었던 건 맞대결이 거듭될수록 점수 차가 좁혀졌다는 거였다. 5번째 대결에서는 팽팽한 대결 끝에 연장전에서 패했다.
그는 오기가 생겼다. 먼데이를 이기기 위해 바르셀로나 올림픽 3개월 전부터는 친구도 만나지 않고, 외출도 하지 않으며 수도승처럼 살았다.
올림픽에서 여러 개의 메달을 딴 선수들이 2012년 한 행사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사격 진종오, 태권도 황경선, 레슬링 박장순. 동아일보 DB
74kg급 선수로 은퇴한 그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74kg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지도하는 선수들과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함께 훈련한다. 그는 “순간 스피드만큼은 지금도 자신 있다. 스피드가 있으면 기술이 완벽하지 않아도 경기를 주도해 나갈 수 있다”며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려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체중이 더 늘지 않게 몸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다.
박장순 감독은 요즘도 꾸준한 산행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관리한다. 사진은 박 감독이 반려견과 산책을 하는 모습. 박장순 감독 제공
그가 잘하지 못했던 건 달리기였다. 당시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선수들은 불암산 정상까지 뛰어오르곤 했는데 그는 레슬링 선수 중 꼴찌를 도맡아 했다.
다시는 쳐다보지도 싫을 것 같지만 그는 요즘도 가끔 집이 있는 남양주 별내에서 불암산까지 등산을 하곤 한다. 그는 “선수 때는 불암산 산신령님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면서 운동을 했다. 요즘도 가끔 불암산 등산을 하며 불암사에 들르곤 한다”고 했다.
쉬는 날엔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곤 한다. 최근에도 강원도 강릉과 양양을 다녀왔다. 그는 “평일에 열심히 선수들을 지도한 뒤 휴일에는 마음을 비우고 재충전을 한다”며 “선수들에게도 운동할 때는 최선을 다하고, 쉴 때는 화끈하게 쉬고 오라고 한다”고 했다.
박장순 감독이 용인 삼성생명 훈련장에서 두 팔을 벌리고 포즈를 취했다. 배경에는 박 감독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당시의 모습이 보인다. 용인=이헌재 기자
그는 “굳이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기구를 들며 복근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집에서 소파 위에서나 방석을 깔고 앉아 엉덩이를 붙인 채 발을 반복해서 들어 올리는 가벼운 동작으로도 충분하다”며 “TV를 볼 때든, 쉴 때든 이렇게 한 달 만 꾸준히 하면 복근을 통해 에너지가 생기고, 굽어 있던 어깨가 펴지는 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바닥에 엎드린 채로 양손과 양발을 들어 올리는 동작도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아주 좋다”고 덧붙였다.
20년 가까이 삼성생명 감독을 맡고있는 그는 침체에 빠진 한국 레슬링 자유형의 미래를 여자 레슬링에서 찾고 있다. 삼성생명은 2021년 여자 자유형 레슬링팀을 창단했고, 소속 선수 천미란이 4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여자 자유형 50㎏급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4위에 오른 천미란은 내년 파리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박장순은 “일본은 여자 레슬링 강국이다. 우리도 못할 게 없다. 좋은 선수들을 잘 키워 새로운 메달밭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 같은 지도자가 되려는 그의 인생 최종 목표는 선수촌장이다. 대한체육회 이사도 맡고 있는 그는 “선수로서, 또 지도자로서 행복한 인생을 보냈다. 언젠가는 선수촌장으로 내가 살아온 인생과 노하우를 후배 선수들과 함께 나누는 꿈을 꾼다. 그날을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