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문화부 차장
매년 12월이 되면 세계 발레계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발레 ‘호두까기인형’을 공연한다. 189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된 발레 ‘호두까기인형’은 올해에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파리오페라발레단(BOP)을 비롯해 영국 로열발레단,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등에서 12월 대표 프로그램으로 선보인다. 국내 대표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UBC) 역시 이달에 ‘호두까기인형’ 공연을 펼친다.
올해의 ‘호두까기인형’이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건 멀리 미국 보스턴에서 날아온 소식 때문이다. ABT, 뉴욕시티발레단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발레단인 보스턴발레단이 연말 ‘호두까기인형’ 공연에서 한국인 무용수 5명을 주역으로 캐스팅한 것. 수석무용수 발레리나 한서혜와 채지영을 비롯해 남성 솔로이스트 이선우와 세컨드 솔로이스트 이상민, 코르 드 발레 김석주가 주인공이다. 보스턴발레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호두까기인형’ 예매 화면의 메인 사진으로 채지영의 공연 사진이 걸려 있었다. 새삼 ‘K발레’의 위력이 느껴졌다.
최근 몇 년 새 세계 유명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활약하는 한국인 무용수들이 꽤 늘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에투알이 된 박세은,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김기민, ABT 서희와 안주원, 모나코 몬테카를로발레단 안재용이 대표적이다. 이들 상당수가 연말에 ‘호두까기인형’ 무대에 오른다.
과거 박세은은 “내 삶의 100%가 발레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언제나 관객에게 최고의 무대를 선사하는 발레리나가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만삭일 때도 그는 토슈즈를 신고 연습실에 갔고, 연습이 끝나면 ‘오늘 부족한 건 뭐였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생각을 차단하려고 일부러 ‘제과’라는 취미를 만들었을 정도다. 다른 발레리노에 비해 배로 높이 뛰는 점프력을 가져 ‘중력을 거스르는 도약’이란 수식어가 붙는 김기민 역시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가 된 뒤에도 매일 오전 7시에 연습실에 도착해 10시간가량 연습한다. 근력 운동만 매일 5시간씩 할 정도다. 완벽한 테크닉에 숨겨진 특별한 비결은 없었다. 그저 노력과 연습만이 답이었다.
세계에서 활약하는 무용수가 늘면서 한국 발레 ‘꿈나무’들이 꿈꾸는 외연도 넓어졌다. 과거엔 국립발레단, UBC 입단이 목표였다면, 최근 발레 전공자들에게 세계 유명 발레단 입단은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닌 ‘현실 가능한 목표’가 됐다. 10년, 20년 뒤 세계 발레 무대를 누빌 K무용수들의 활약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이유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