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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성열]진영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사법부

입력 | 2023-12-18 23:45:00

유성열 사회부 차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1년 9월부터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퇴임한 올해 9월까지 사법부를 지켜본 국민들은 상당한 피로감을 겪어야 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이른바 ‘사법 농단’ 사태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이란 민주주의 원칙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재판 지연’이 만연한 김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국민들은 헌법이 보장한 ‘신속히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당했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법언까지 무색해졌다.

무엇보다 12년 동안 대한민국 사법부가 과연 국민을 대표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됐다. 사법부가 국민이 아니라 진영을 대표한다는 의심을 사면서 국민들도 반으로 갈라졌다. 진보 진영에선 양 전 대법원장 체제가 보수 정권과 결탁해 사법 농단 사태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보수 진영에선 김 전 대법원장이 야권 성향의 이른바 ‘정치 판사’를 요직에 앉히고 야당 인사들의 재판을 줄줄이 지연시켰다고 본다.

민주주의 원리를 따져볼 때 엄밀하게 말하면 사법부는 국민을 직접 대표하진 않는다. 입법 사법 행정 중 유일하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지만,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판사는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사법부는 국민을 대표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권리를 침해당한 국민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곳이자 기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미 연방대법관들을 판사(Judge)가 아니라 ‘Justice’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들이 ‘정의(Justice)의 화신’ 역할을 하도록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어서다.

사법부가 국민을 대변하지 않는다면 입법과 행정이 아무리 잘 작동해도 민주주의는 금세 무너진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법부만 국민이 선출하지 않도록 한 것은 법관에게 필수적인 고도의 전문성과 도덕성 때문이다. 선출된 권력이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는 전 세계 곳곳에서 숱하게 볼 수 있다. 오히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에 사법부는 전문성과 도덕성을 더 갖춰야 하고 국민을 더 많이 대표하고 대변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사법부의 역설이자 국민이 기대하는 사회적·역사적 책무다.

8일 국회 인준을 받은 조희대 대법원장은 진영을 넘어 12년의 피로감을 해결해 줄 적임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조 대법원장이 ‘보수 성향’이라며 검증에 나선 야당 의원들조차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청렴성과 도덕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흠결이 없다”는 등의 호평을 쏟아냈다. 본회의 인준 표결 역시 반대가 18표에 불과할 정도로 야당이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지난날 서슬 퍼런 권력이 겁박할 때 사법부는 국민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다”고 밝혔고, “평등의 원칙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빈부 간에 심한 차별을 느끼게 했다”고도 했다. 법조계에선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만 옹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거란 분석이 나왔다. 조 대법원장이 지금의 초심을 유지하면서 진영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사법부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