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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승련]김건희 특검법과 대통령의 선택

입력 | 2023-12-18 23:48:00

“한 톨 증거 없다”면 마다할 이유 없다
김 여사는 후보 때 약속 지키는 게 도리



김승련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결단의 순간을 맞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8일 김건희 특검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다. 대통령은 내년 1월 중순쯤까지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총선, 민심, 책무, 가족이 뒤엉킨 사안으로 홀로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대로라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전망된다. 총선을 앞둔 민주당 노림수에 동의 못 하리라 짐작된다. 법안을 보면 수사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도이치모터스뿐만 아니라 김 여사 가족 전체의 모든 주식을 수사할 수 있다. 반대 논리도 만만찮다.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등 거부했던 법안들이 지닌 정책적 독소가 특검법에는 없다. 타이밍 맞춘 듯 공개된 손가방 수수 영상에 상처받은 민심을 헤아려야 한다. 거부권은 대통령 권한이지만 배우자 수사여서 회피(回避) 사유라는 주장도 있다.

총선 코앞 특검법은 검찰이 빌미를 줬다. 문재인 검찰이 2년간 붙들다가 넘긴 수사는 3년 반이 넘도록 결론이 없다. 한동훈 법무장관이 지난해 5월 “최종 처분만 남았다”고 한 말과 아귀가 안 맞는다. “한 톨의 증거도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 상부의 지시에도 ‘증거가 안 된다’며 기소를 못 했다. …진짜 팩트”라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주장은 또 어떤가. 무죄로 결론짓고 1년 넘게 끌었다는 이야기다. 총선 뒤 “혐의 없음”이라고 할 참이었던가.

한동훈이든 원희룡이든 곧 등장할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열흘 안쪽에 해법을 찾아야 하는 승부가 기다리고 있다. 경우의 수는 둘이다. 첫째,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길이다. 총선이 영부인 이슈로 뒤덮일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둘째, 특검법을 주도적으로 찬성하는 길이다. ‘한 톨 증거’도 없다면 피할 이유가 없다. 그동안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다만, 여야 간 절충의 묘가 더해져야 가능한 선택지다. 법안은 지금 통과시키더라도 수사는 총선 뒤로 늦출 수 있다. 또 과거 특검법이 그랬던 것처럼 수사 범위를 구체화하면서 좁히는 일이다. 둘 다 민주당으로선 양보하는 것 같지만 상식에 부합한다. 총선 영향 준다며 이재명 선고를 늦추는 마당에 영부인 특검을 시작하자는 민주당 주장에 중도층은 동의할까.

당정 일체를 강조해 온 김기현 체제에서 김건희 특검법은 금기어였다. 새 비대위원장은 두 번째 카드를 용산에 관철할 의지와 역량을 보여주기 바란다. 건의하는 형식이겠지만 대통령 가족 문제를 당이 주도하는 일이다.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자는 변화 요구를 현실로 만드는 일이다.

대통령의 최종 결심은 짐작하기 어렵다. 어느 쪽이든 관계없이 새 비대위원장은 검찰에 수사 결과를 연내에 발표하도록 촉구하기 바란다. 이제라도 내용을 봐야 특검이 필요한지 아닌지 유권자가 판단할 것 아닌가. 법무장관이 늘 말하는 “이름 가리고 해도 동일한 수사”인지는 혹독하게 검증받게 될 것이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의 대외활동에 대한 종합적인 원칙도 제시해야 한다. “조심 또 조심하겠다”던 대선 때 약속에 가까울수록 민심은 더 수긍할 것이다. 김 여사 동영상 공개 후 3주가 흘렀건만 공식 반응이 없는 건 이해할 수 없다. 7년 넘게 공석인 특별감찰관도 임명해야 한다. 일련의 노력에 여론이 공감할 때라야 새 비대위원장의 특검법 절충 요구가 힘을 받는다. 절충 제안을 수용할지는 민주당 선택이지만 이 역시 총선 국면에서 심판받을 것이다. 리더의 진면목은 일상적 결정이 아니라 큰 결단에서 드러난다. 대통령도, 새 비대위원장도, 이재명 대표도 어떤 인물인지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 앞으로 한 달 사이에 벌어질 일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