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수석’ 트레이닝코치 김용일 양궁 특기생서 부상으로 운동 접어… 부상 선수들 도움 주려 트레이너길 “우승 후에도 비시즌 프로그램 ‘빠듯’… 다음 시즌도 팀 성적이 내 성적표”
LG가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한 1990년 한국시리즈 축승회 때 김 코치(오른쪽)와 당시 우승 주역이었던 정삼흠 투수(가운데). 김용일 코치 제공
차명석 프로야구 LG 단장은 팀이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뒤 이렇게 말했다. 김 코치는 1989년 LG 전신인 MBC에 트레이너로 입단한 뒤 1990, 1994, 2023년 우승을 모두 함께했다. LG의 세 차례 우승을 모두 함께한 인물은 김 코치뿐이다.
LG 안방인 서울 잠실구장에서 1일 만난 김 코치는 “내게는 차 단장이 가장 감사한 분”이라며 “29년 만에 다시 우승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윗분께 대들다가 잘리기도 하고…. (2019년) 미국에 갈 때도 사실 LG를 떠난다는 생각이었는데 (차 단장 덕분에) 복귀하고 우승까지 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김 코치는 양궁 특기생으로 경북체육고, 안동대에 입학했지만 대학교 1학년 때 운동을 접었다. 고3 때 다친 허리가 끝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부상을 당한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트레이너 길에 들어섰다.
김 코치는 “처음에는 야구 선수들 부상을 너무 몰랐다. 일상생활은 멀쩡히 하는데 야구할 때만 아프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프로야구 무대에서 첫 시즌을 보낸 뒤 자비 500만 원을 들여 일본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첫 월급이 40만 원이었으니 1년 동안 번 돈을 모두 연수에 쓴 셈이다.
김 코치가 전문성을 발휘하면서 구단도 트레이닝 파트를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당시 2명이던 LG 트레이닝 파트는 현재 12명까지 늘었다. 반대로 김 코치의 머리숱은 눈에 띄게 줄었다. 김 코치는 “LG에 머리카락을 바쳤다”며 웃었다.
이어 “올해 한국시리즈 준비 과정에서도 선수들 부상 걱정으로 머리카락이 남아나지 않았다. 박동원, 신민재, 켈리, 함덕주 모두 회복에만 집중해야 했다. 김진성도 팔꿈치가 많이 안 좋았다”면서 “옛날 같았으면 ‘선수가 지금쯤은 뛸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겠지만 지금은 트레이닝 파트에 다 맡겨준다. 선수들이 한국시리즈 때 제대로 못 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모두 잘 뛰어줬다”고 했다.
김용일 LG 수석 트레이닝 코치가 1일 서울 잠실구장 트레이닝실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12월은 프로야구 비시즌이지만 몸을 단련하려는 선수들이 트레이닝실을 찾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