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LG 3차례 우승 함께… “선수들 부상 걱정에 머리숱 확 줄어”

입력 | 2023-12-19 03:00:00

국내 1호 ‘수석’ 트레이닝코치 김용일
양궁 특기생서 부상으로 운동 접어… 부상 선수들 도움 주려 트레이너길
“우승 후에도 비시즌 프로그램 ‘빠듯’… 다음 시즌도 팀 성적이 내 성적표”




LG가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한 1990년 한국시리즈 축승회 때 김 코치(오른쪽)와 당시 우승 주역이었던 정삼흠 투수(가운데). 김용일 코치 제공 

“이번 우승 과정에서 가장 고마운 분은 김용일 코치(57)다.”

차명석 프로야구 LG 단장은 팀이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뒤 이렇게 말했다. 김 코치는 1989년 LG 전신인 MBC에 트레이너로 입단한 뒤 1990, 1994, 2023년 우승을 모두 함께했다. LG의 세 차례 우승을 모두 함께한 인물은 김 코치뿐이다.

LG 안방인 서울 잠실구장에서 1일 만난 김 코치는 “내게는 차 단장이 가장 감사한 분”이라며 “29년 만에 다시 우승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윗분께 대들다가 잘리기도 하고…. (2019년) 미국에 갈 때도 사실 LG를 떠난다는 생각이었는데 (차 단장 덕분에) 복귀하고 우승까지 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2000년 현대로 팀을 옮겼던 김 코치는 삼성을 거쳐 2009년 LG로 돌아왔다. 그러다 2019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에서 뛰던 류현진(36)의 개인 트레이너가 되면서 다시 팀을 떠났다. 차 단장은 2020년 바로 김 코치에게 ‘팀에 돌아와 달라’고 부탁하면서 국내 1호 ‘수석’ 트레이닝 코치 직함을 달아줬다. 김 코치는 “구단에서 ‘당신을 믿을 테니 알아서 하세요’라고 전권을 준 것이다. 트레이닝 파트가 못하면 안 되는, 변명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양궁 특기생으로 경북체육고, 안동대에 입학했지만 대학교 1학년 때 운동을 접었다. 고3 때 다친 허리가 끝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부상을 당한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트레이너 길에 들어섰다.

김 코치는 “처음에는 야구 선수들 부상을 너무 몰랐다. 일상생활은 멀쩡히 하는데 야구할 때만 아프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프로야구 무대에서 첫 시즌을 보낸 뒤 자비 500만 원을 들여 일본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첫 월급이 40만 원이었으니 1년 동안 번 돈을 모두 연수에 쓴 셈이다.

김 코치가 전문성을 발휘하면서 구단도 트레이닝 파트를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당시 2명이던 LG 트레이닝 파트는 현재 12명까지 늘었다. 반대로 김 코치의 머리숱은 눈에 띄게 줄었다. 김 코치는 “LG에 머리카락을 바쳤다”며 웃었다.

이어 “올해 한국시리즈 준비 과정에서도 선수들 부상 걱정으로 머리카락이 남아나지 않았다. 박동원, 신민재, 켈리, 함덕주 모두 회복에만 집중해야 했다. 김진성도 팔꿈치가 많이 안 좋았다”면서 “옛날 같았으면 ‘선수가 지금쯤은 뛸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겠지만 지금은 트레이닝 파트에 다 맡겨준다. 선수들이 한국시리즈 때 제대로 못 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모두 잘 뛰어줬다”고 했다.

김용일 LG 수석 트레이닝 코치가 1일 서울 잠실구장 트레이닝실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12월은 프로야구 비시즌이지만 몸을 단련하려는 선수들이 트레이닝실을 찾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 코치는 우승 이후에도 딱 하루만 쉬고 매일 잠실구장으로 출근 중이다.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선수들에게 비시즌 프로그램을 짜주려면 일정이 빠듯하다. 김 코치는 “스프링캠프 전까지는 선수들이 굳이 잠실로 안 와도 된다. 그런데 우리를 찾아준다는 건 우리가 몸을 가장 잘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믿음에 보답하는 게 우리 일”이라며 “‘노력했으니 알아 달라’고 하면 아마추어다. 선수들을 도와주는 ‘프로’로서 다음 시즌에도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걸로 평가받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1년 내내 야구장에 붙어 있느라 아내가 아들 둘을 사실상 홀로 키웠다. 아내와 두 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