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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쓰던 중국 관광객들, 이제 안 와요? 사라진 유커와 그 대안[딥다이브]

입력 | 2023-12-20 10:00:00


코로나 혹한기를 간신히 버텼건만, 볕이 들긴커녕 한파가 몰아치는 업종이 있습니다. 바로 면세점인데요. 다시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려온 ‘큰손’ 중국 단체관광객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얘기만이 아닙니다. 홍콩과 동남아시아, 유럽에서도 ‘중국 단체관광객 실종’ 현상에 애가 타는데요. 도대체 그 많던 중국 관광객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과연 기다리면 언젠가 돌아오긴 돌아올까요. 오늘은 전 세계 관광업계를 좌절시킨 중국 여행객의 사정을 들여다봅니다.

지난 8월 인천공항에서 한국관광공사의 환영을 받으며 입국하는 중국 단체 관광객들의 모습. 이때만 해도 볕들 날이 곧 오는 줄 알았다. 동아일보DB

*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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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중국인 입국자 수는 올해 4분기 85% 정도까지 회복돼, 올해 약 220만명을 기록할 것이다. 단체 관광 재개에 따른 중국 관광객 증가로 인한 올해 GDP 성장률 제고효과는 +0.06%포인트이다.’

지난 8월 한국은행 ‘경제전망보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8월 10일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한국행 단체관광을 허용하면서,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때였죠. 2017년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단체 관광이 끊긴 지 6년 여만이었는데요. 이에 면세점·카지노·화장품주 주가가 며칠 만에 수십 퍼센트 급등하며 환호했습니다.

그리고 넉 달이 지난 지금, 업계가 당황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돈 잘 쓰는 중국 단체관광객들은 다 어디로 간 거죠?
일단 통계부터 볼까요. 올해 10월 방한한 중국 관광객은 24만9000명. 전달보다 줄었고,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0월(56만7000명)과 비교하면 44% 수준에 그쳤습니다. 다른 나라 관광객은 그럭저럭 회복했는데, 중국만 유독 반토막을 면치 못합니다. 국경절 황금연휴 효과? 그런 거 없었습니다. 지난 9월 정부는 중국 단체관광객 전자비자 발급수수료(1만8000원) 면제 등 지원책을 내놓으며 ‘올해 연간 중국 관광객 200만명’을 내다봤지만, 목표 달성이 만만찮아 보입니다(1~10월 154만명).

중국 관광객이 돌아오지 않아 울상인 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인이 가장 많이 가는 해외 여행지 하면 단연 태국이 1위로 꼽히는데요. 태국은 올해 1~10월 280만명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그쳤습니다. 올해 연간 목표치(500만명) 달성은 물 건너간 지 오래고, 2019년(1100만명)의 30% 수준에 그칠 걸로 보입니다.

일본도 비슷합니다. 올해 10월 일본에 여행 간 중국 관광객은 25만6000명. 4년 전의 35%에 불과합니다. 차라리 회복률 면에서 한국이 나은 편이라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랄까요.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
‘제로 코로나 끝=보복 해외여행 수요 폭발’이란 공식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나가 놀고 싶어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돈 쓰는 걸 주저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국경절 연휴 때 중국 만리장성이 밀려든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는 보도 보셨나요? 이 연휴기간 중국 국내 여행객은 지난해보다 71% 급증해 8억2600만명에 달했다고 하죠. 즉, 놀고 싶은 중국인들이 해외로 나가는 대신 국내 여행을 한 겁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동남아 단체관광 상품 가격은 1인당 5000위안(약 90만원) 정도. 항공·호텔·교통비가 올라 코로나 이전(3000위안)보다 비싸졌죠. 일본이나 한국 여행을 위한 항공권 가격도 이전보다 뛰어 부담스럽고요. 하지만 ‘꼬치구이 성지’가 된 산둥성 쯔보(淄博)시로 바베큐 여행을 떠나는 데 비용은 몇백 위안이면 충분합니다.

이렇게 가성비 국내 여행만 뜨는 배경엔 경기침체가 있습니다. 대만 단장대학의 차이밍팡 경제학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 젊은이들은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외로 여행하겠어요? 중국인이 해외 여행을 떠날 유인이 크게 줄었고, 이는 피할 수 없는 추세입니다.

중국은 청년 구직난이 심각합니다. 지난 6월 청년(16~24세) 실업률이 21.3%에 달해 석 달 연속 20%를 웃돌았는데요. 다섯 명 중 한 명이 실업자란 거죠. 이후 중국 정부는 청년실업률 공개를 중단했지만, 올해 여름 대학 졸업생이 역대 최대인 1158만명이나 쏟아져 나왔으니 상황은 더 악화했을 게 뻔합니다.




한때 중국 중산층을 부자로 만들었던 집값이 뚝 떨어지면서 이들의 여유가 사라졌다. 블룸버그는 18일 기사에서 ‘중국 부동산 붕괴가 중산층의 부를 타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게티이미지

게다가 멀쩡한 직장과 집이 있더라도 예전처럼 여유가 없습니다. 집값과 주가가 고꾸라지면서 예전보다 가난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블룸버그와 인터뷰한 상하이 출신 금융인 토마스 저우는 올해 주식은 30%, 부동산 가격은 20% 떨어졌다고 털어놓는데요. 그는 “나를 지탱하는 건 대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직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합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대도시 주요 지역 집값은 이미 15% 빠졌고,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보다 비싸진 해외여행까지 갈만한 마음의 여유는 줄어듭니다.

아시아태평양항공협회의 수바스 메논 회장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모든 아시아 항공사들이 중국의 여행 수요 증가를 기다리고 있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의 거시경제적 요인이 아시아 전역 항공 여행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중국인을 부유하게 만들었던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았고, 인플레이션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특히 청년 실업률이 매우 높고요.”


돈 아껴서 인스타 사진 찍는다
여행업계가 중국 여행객을 애타게 기다리는 건 그 규모뿐 아니라 중국인이 ‘큰손’이라는 이유도 있죠. 한국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싹쓸이 해가거나, 홍콩 쇼핑몰에서 지칠 때까지 쇼핑하는 중국 관광객은 큰 환영을 받는 존재였습니다.

이제 그게 옛날얘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중국 관광객들은 더 이상 버스를 타고 우르르 가게로 몰려다니지 않습니다. 면세점에서 브랜드 화장품을 사는 대신 올리브영에서 중저가 화장품을 사고, 동네 저렴한 음식점 또는 사진 찍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닙니다. 왜냐. 가성비가 좋을 뿐 아니라 샤오홍슈(중국판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핫스팟으로 통하거든요. 비씨카드의 통계를 확인해보면 중국인이 유니온페이를 이용해 한국에서 올해 1~9월 쓴 돈 중 면세점 비중은 35.9%에 그쳤습니다. 2019년(63.1%)과 비교해 절반 가까이로 줄었죠.

면세점에서 한국 화장품 쓸어담던 중국 관광객이 이제 보이지 않는다. 사진은 2016년 국경절 연휴 당시의 롯데면세점 모습. 동아일보DB

한마디로 중국 관광객들이 이제 예전처럼 돈을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훨씬 검소해졌죠. 쇼핑이나 명승지 투어보다는 현지인의 생활방식을 경험하고 싶어 하고요.

이런 달라진 트렌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최근 홍콩에서 있었는데요. 영국 명품 백화점 하비 니콜스가 지난달 홍콩 센트럴 랜드마크몰 매장을 철수한다고 발표한 겁니다. 2005년 처음 문 연 지 18년 만의 일이죠. 하비 니콜스 측은 “홍콩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은 더 이상 팬데믹 이전처럼 쇼핑에 열을 올리지 않는다”고 철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올해 이 백화점 방문자 수가 팬데믹 이전의 60% 수준에 머물렀다는데요. 홍콩소매관리협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 관광객의 지출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가운데, 특히 전자제품·시계·보석류·의류가 가장 크게 타격을 받고 있죠.

영국 명품 백화점 하비 니콜스는 18년 동안 운영한 홍콩 랜드마크몰 5층의 플래그십 매장을 철수한다고 지난달 말 발표했다. 중국 본토 관광객의 소비력 감소 탓이라는 설명이다. 하비 니콜스

하지만 동시에 홍콩의 에그타르트 맛집 베이크하우스나 배우 위엔윙이(양영의) 부부가 좋아한다는 작은 식당 ‘투 그린스’는 본토 관광객이 북적거린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성수동·안국동 카페를 찾아가거나 편의점에서 약과 같은 먹거리를 사는 중국 관광객들이 늘고 있죠. “중국인 관광객이 유커(단체 관광객)에서 싼커(개별 관광객)로 변화한 만큼, 이전과 다른 마케팅 전략-지역별 핫플레이스나 체험상품 발굴-이 필요하다”(현대경제연구원 ‘중국인 관광객 회복 지연 원인과 시사점’ 보고서)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인도에 구애하는 동남아
“우리는 중국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합니다.”
차이 임시리 타이항공 CEO가 지난달 아시아태평양항공협회 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경기 둔화에 발목 잡힌 중국의 부진을 만회할 다른 여행 수요를 찾아내야 한다는 뜻인데요. 그럴 만한 나라가 과연 있을까요.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의 11월 보고서에 따르면 어쩌면 인도가 유력한 후보입니다.

맥킨지는 지난해 1300건이던 인도의 해외여행 수요가 2040년까지 최대 9000만건으로 급증할 걸로 예상한다. 맥킨지 보고서

인도의 지난해 해외 여행은 1300만 건에 달했는데요.이를 2019년 중국 기록(1억400만 건)과 비교하면 너무 적어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도의 1인당 GDP(2021년 2250달러)는 중국의 2006년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중국의 지난 십수년간의 해외 여행 급증세를 인도가 앞으로 따라가게 되겠죠. 그래서 맥킨지는 2040년까지 인도의 해외 여행 건수가 연간 8000만~9000만 건으로 늘어날 걸로 전망합니다.

이미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관광객을 잡기 위해 각국이 발빠르게 나서고 있는데요. 태국은 11월, 말레이시아는 이달부터 인도인에 대해 최대 30일의 무비자 여행을 도입했고요. 인도네시아 역시 인도를 포함한 20개국에 대한 무비자 입국 허용을 검토 중입니다. 지난해 일찌감치 인도인에 무비자 체류를 허용하며 선수를 친 베트남의 경우, 올해 인도 관광객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자, 그럼 우리도? 글쎄요. 올 1~10월 한국을 찾은 인도 관광객 수는 10만명 남짓입니다. 절대 수는 적지만 증가율(10월 한달 기준 2019년보다 46% 증가)면에선 꽤 높긴 하죠.

하지만 인도인이 선택하는 해외여행 목적지 톱 20위 안에 한국은 물론 일본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거리 탓이 큰데요. 맥킨지에 따르면 인도인은 비행시간이 4시간 이내인 목적지를 선호하는데, 이는 주로 중동과 동남아시아이죠. 뉴델리 기준 서울까진 6시간이 걸립니다. 거리를 기준으로 보자면 예컨대 튀르키예 같은 나라와 경쟁해야 하는 겁니다.

물론 높은 성장 잠재력을 고려하면 투자를 할 만한 가치는 있겠죠. 글로벌 DMC 그룹인 유로믹의 라지브 콜리 회장은 “인도 관광객은 중국을 대체하는 게 아니다. 중국인이 다시 여행을 시작하면 (인도 관광객을 유치한 국가는) 두 배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데요. ‘중국 과의존’은 문제이고 ‘다변화’가 해답이라는 이야기가 관광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겠습니다. By.딥다이브

물론 내년엔 올해보다 더 많은 중국 관광객이 돌아올 거란 긍정적인 전망이 여전히 많습니다. 하지만 한한령 이전인 2016년 시절로 다시 돌아갈 거란 확신은 없죠.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여러가지가 변했습니다. 달라진 세상에 맞춰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중국이 한국행 단체 관광을 다시 허용하면서, 온 여행 업계 주가가 치솟을 정도로 들떴던 게 지난 8월. 하지만 김칫국만 마셨다는 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유커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도 중국 관광객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데요. 부동산 시장 침체와 청년 실업률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국 경제의 영향입니다.

-무엇보다 중국인의 여행 트렌드가 바뀌었습니다. 면세점 쇼핑 대신 인스타그래머블한 동네 가게나 카페를 찾아갑니다. 중국 관광객들이 예전보다 훨씬 검소해지면서 홍콩 명품 백화점은 문을 닫게 됐습니다.

-이대로 중국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순 없습니다. 동남아시아는 새로운 시장인 인도 해외 관광객을 붙잡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는데요. 한국도 잠재력 큰 인도 시장에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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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