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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마다 맛이 천차만별… 입맛따라 즐기는 ‘황금빛 액체’ 위스키

입력 | 2023-12-20 03:00:00

동아일보 ‘광화문 살롱’
금주법-마피아 등 역사 겪으며 오늘날 사랑받는 술로 자리매김
만드는 과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오크통 만든 나무 따라 향 달라
수천 가지 종류의 위스키 탄생




1월 광화문 살롱 원우들이 남양주에 있는 위스키 증류소 ‘쓰리소사이어티스’에 방문했다. 쓰리소사이어티스는 우리나라 최초의 크래프트 싱글몰트 증류소로 2020년 오픈했다. 우리나라는 쓰리소사이어티스를 비롯해 위스키 증류소가 3개 정도 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위스키는 지극히 개인의 취향을 반영합니다. 가장 좋은 위스키는 비싼 위스키가 아니라 나의 취향에 맞아 내 입을 즐겁게 하는 위스키입니다.”

지난 11월부터 진행 중인 동아일보 위스키 최고위 과정 ‘광화문 살롱’의 박병진 주임교수의 말이다.

어느 순간 주위에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입맛은 제각각이고 위스키 종류는 수천 가지. 본인의 취향만 알아도 선택지는 반으로 줄어든다.

우리가 보통 위스키라고 부르는 것은 ‘스카치위스키’를 말한다. 스카치위스키 역사에서 세무 당국과 증류업자들 간의 투쟁은 빼놓을 수 없다. 세관원은 불법 증류를 막기 위해, 증류업자들은 생계를 위해 서로 쫓고 쫓기며 목숨을 건 싸움을 했다.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오늘날 피트 향의 황금빛 액체를 얻게 됐다.

위스키 교육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의 위스키를 시음해볼 수 있다.

17∼18세기가 아이리시와 스카치위스키의 시대였다면 19세기 말은 아메리칸 위스키의 전성기다. 독립전쟁 이후 미국에는 780개의 증류소가 있었다. 미국인은 기상과 동시에 술로 시작해서 ‘잘 때 마시는 술’로 일과를 마쳤다. 술을 밥 먹듯이 마셨던 셈이다. 월급을 가족의 식비가 아닌 술값으로 탕진하고 여성과 어린이는 굶주림과 가정폭력에 노출됐다. 주취자들의 사회는 도시를 범죄로 물들게 했다. 술을 마셔도 너무 많이 마시던 시절이다. 이에 미국은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1920년 1월 16일 미국에서 모든 술의 제조, 판매, 유통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금주법이 내려졌다. 양조 시설과 술병은 모두 파기됐고 오크통에 담겼던 술은 하수구에 흘려보내졌다. 이는 맥주와 와인, 위스키, 진 등의 합법적인 판매가 금지됐음을 의미한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알코올중독,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미국 위스키 증류업자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수많은 증류소가 문을 닫아 결국 12개만 남게 된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마시던 음주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었다. 금주법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음주량이 감소하는 듯했으나 금세 제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술꾼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밀주를 판매하던 술집들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간판을 떼고 음지로 들어간다. 이때 단골들만 은밀하게 비밀번호를 대 가며 이용할 수 있게 탄생한 게 ‘스피크이지 바’다. 술을 밀수, 밀매하는 갱들이 판을 쳤고 폭력이나 살인을 비롯한 각종 조직적인 범죄가 성행하게 된다. 이때 ‘밤의 대통령’이라 불린 알 카포네라는 마피아가 세상에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1929년 10월 대공황이 미국을 덮치면서 금주법은 힘을 잃게 된다. 증권시장의 붕괴로 주가가 폭락하고 생산 산업은 반토막이 났다. 무역량은 70% 축소됐고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다. 버번이나 증류주의 주요 원료인 옥수수나 곡물 등은 창고에 쌓이거나 버려졌다. 결국 미국 정부는 주류 판매를 통해 세수를 회복하고 음지로 빠진 양조업계를 다시 살려야겠다고 판단한다. 루스벨트는 금주법 폐지를 제1 공약으로 내세워 전 국민의 엄청난 지지와 함께 1932년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33년 금주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대표적인 5대 위스키 생산 국가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미국, 캐나다, 일본이다. 하지만 위스키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위스키는 아니다. 각 나라마다 위스키에 대한 정의와 제조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위스키의 제조 과정은 대개 7단계로 이뤄진다. 몰팅(Malting)→제분(Milling)→매싱(Mashing)→발효(Fermentation)→증류(Distillation)→숙성(Maturation)→병입(Bottling)이 그 순서다.

위스키의 맛을 결정하는 오크통.

발효된 곡물을 통해 얻은 ‘스피릿(증류주)’을 오크통에 넣어 숙성시켜 위스키를 만든다. 정형화된 제조 방식과는 다르게 맛 차이는 증류소별로 천차만별이다.

위스키의 맛을 결정짓는 요인은 수없이 많다. 원료, 발효 시간, 증류 방식, 오크통의 종류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오크통이다. 오크통이 위스키 맛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스카치위스키는 규정상 스코틀랜드 증류소에서 최소 3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원액이 길게는 30년 이상 숙성되기 때문에 오크통의 영향력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한날한시에 숙성한 스피릿은 오크통의 종류와 크기, 숙성 기간 등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스코틀랜드 증류소는 숙성 과정에서 새 오크통을 기피한다. 자칫 나무 맛이 너무 강하거나 사카린 등 인공감미료 맛이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다른 술을 숙성할 때 사용했던 오크통을 활용한다. 즉, 전에 담겨 있던 내용물에 따라 위스키가 영향을 받게 되는 것. 예컨대 500ℓ 셰리 와인을 담고 있던 오크통에 있는 원액이 최대 10ℓ에 달한다고 한다. 아무리 개성 강한 스피릿도 그 오크통에서 숙성되면 자연스레 셰리 맛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다.

위스키 오크통 시장의 90%는 셰리와 버번 오크통이 차지하고 있다. 셰리 오크통은 주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 자라는 유러피언 오크로 제작되고 버번 오크통은 미국의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 품종을 사용한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는 부드럽고 달콤한 바닐라와 열대과일, 캐러멜 노트를 갖고 있다. 반면 유러피언 오크는 말린 과일과 계피, 감귤류를 포함해 매콤한 맛이 특징이다. 목재의 종류가 위스키 맛으로 이어지게 되는 셈이다.

평소 술 마시기를 즐긴다는 김상욱 경희대 교수가 광화문 살롱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위스키를 생산했던 적이 있다. 1970년대 후반 위스키의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정부는 국산 주류 개발 계획을 세워 스코틀랜드 몰트위스키 함량 30%의 국산 위스키를 개발하고 시판했다. 1983년에는 위스키 산업의 육성, 품질의 고급화, 외화 절약 등을 위해 ‘국산 위스키 개발 계획’을 마련해 몰트위스키 제조 시설을 완비하고 본격적인 국산 몰트위스키 제조를 시작했다. 1987년부터는 국내 위스키 3사가 국산 위스키 원주와 수입 위스키를 섞어서 국산 특급 위스키를 개발하고 시판했다. 그러나 수년에서 10여 년의 숙성 기간에 따른 재고 증가, 수입 몰트위스키와의 가격경쟁력 문제 등으로 국산화가 어려워져 1991년부터는 생산이 전면 중단됐다.

그러다 2020년 한국 최초의 크래프트 싱글몰트 증류소가 남양주에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위스키 증류소가 3개 정도 세워졌다.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는 정통 스카치위스키 생산 방식을 고수해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다.



동아일보 ‘광화문살롱’은…

국내 최고의 위스키 전문가와 인문학 교수, 저명 인사와 함께 위스키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위스키 교육 과정이다. 위스키의 역사와 종류, 테이스팅 등 위스키에 관한 내용은 물론 최고의 셰프·바텐더와 함께하는 미식 체험, 올바른 테이블 매너, 철학 속 위스키 등 다양한 내용을 배울 수 있다. 교육 종료 후에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위스키 5대 생산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위스키 증류소 탐방’도 진행한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