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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들어간 응급실서 1시간 만에 식물인간으로…“5억 배상”

입력 | 2023-12-19 17:19:00

뉴시스


응급실을 찾은 환자에게 기관 삽관 후 경과 관찰 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로 뇌 손상을 일으킨 대학병원이 약 5억7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19일 인천지법 민사14부(부장판사 김지후)는 식물인간 상태인 A 씨(43)가 후견인을 통해 인천의 한 대학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A 씨는 2019년 4월 28일 오전 10시 58분경 설사 및 호흡곤란 증상으로 아버지와 함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는 병원 의료진에게 2013년 폐렴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신장 문제로 조만간 혈액투석을 시작한다고 알렸다.

의료진은 A 씨가 빈호흡이 심해지고 점차 의식이 처지는 양상을 보이자 같은 날 오전 11시 31분경 마취 후 기관 삽관을 했다. 인공 관을 코나 입으로 집어넣어 기도를 여는 처치법이다.

곧바로 A 씨에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했으나 5분도 지나지 않아 심정지 상태가 됐다. 병원 응급구조사가 급히 흉부 압박을 했고, 의료진도 수액을 투여한 뒤 심폐소생술을 했다.

오전 11시 41분경 A 씨의 심장 박동이 살아났으나 심정지로 인한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그는 반혼수 상태에 빠졌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자각적 증상을 표현할 수 없는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후견인인 A 씨 아버지는 2020년 5월 변호인을 선임한 뒤 13억4892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변호인은 소송 과정에서 “환자가 의식이 있는데도 의료진이 불필요한 기관 삽관을 했다”며 “기관 삽관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지 않는 등 경과 관찰 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 씨에게 위자료 7000만 원을 포함한 5억7351만 원을 지급하라고 학교법인 측에 명령했다.

재판부는 “병원 의료진에게 기관 삽관 시술 과정에서 요구되는 경과 관찰 의무를 게을리해 필요한 조치를 다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며 “이 과실과 A 씨의 저산소성 뇌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의료진은 기관 삽관을 결정한 후부터 심정지를 확인한 사이 A 씨의 상태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기록하지 않았다”며 “A 씨의 신장 기능이 떨어진 상태인 점을 고려해 일반적인 환자보다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면밀히 살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19년 4월 28일 이전에 A 씨에게 뇌 손상 등 신경학적 이상 소견이나 심정지 발생 사례가 없는 점 등에 비춰 의료상 과실과 A 씨의 저산소성 뇌 손상 사이에 다른 원인이 게재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의료진이 A 씨의 상태 변화를 면밀히 관찰했다면 더 빨리 적절한 응급조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A 씨의 호흡수가 증가하고 의식도 점차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관 삽관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병원 의료진이 A 씨의 심정지 이후 뇌 손상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점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