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보배인 저출산 시대에도 ‘품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유기된 아이들. 그리고 부모가 방임한 아이들까지.
올해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두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우리 주위엔 여전히 미아처럼 품을 찾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
그동안 이 아이들은 뭘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두고 가도록 마련된 상자)를 500시간 동안 관찰하고, 품을 찾아 떠도는 0~29세 아동·청년 47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해 아가야.”자립준비청년. 성인이 된 청년들에게 ‘자립준비’라는 모순적인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남들보다 빠르고 외로운 홀로서기를 맞닥뜨리기 때문일 것이다.
2020년 유권자 연령이 하향되면서 만 18세는 선거에서 투표권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완전한 ‘법적 성인’인 나이가 됐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진학과 취업 같은 거대한 결정들 앞에 선 막막한 청년들이기도 하다. 세상의 편견도 날 것 그대로 마주해야 한다. 지난해 광주에서는 보육원에서 자란 자립준비청년 2명이 연달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이들의 유서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삶이 고달프다”라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정부는 올해부터 자립 수당을 인상하고 맞춤형 사례관리를 강화하는 등 정책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돈과 제도만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10대부터 20대까지의 자립준비청년 35명을 만났다. 청년들은 말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삶의 고비에서 도움을 줄 ‘믿을 만한 어른’, 눈치 보지 않고 꿈을 향해가라는 응원, 그리고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봐줄 편견 없는 시선이라고.
이 가운데 4명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실어봤다. 링크를 통해 인터랙티브 기사 ‘사운드트랙: 품을 잃은 아이들(https://original.donga.com/2023/poom2)’에 접속하면 자립준비청년과 현재 보호를 받고 있는 아동들의 실제 음성으로 담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조병익(오른쪽)이 12월 9일 초록우산 대전지역본부의 자립준비청년 자조모임 ‘청나비’의 북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조병익은 직접 작사한 ‘웃고 있네’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한 걸음 용기를 얻어가며 나는 내 자신 보며 웃네”
조병익은 자립준비청년 10명과 함께 ‘나 혼자 잘 산다’라는 책을 냈다. 사고 후 방안에 틀어박혔던 병익은 자신과 비슷한 배경의 친구들을 만나며 사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갔다.
두 달 동안 진통제와 항생제 처방만 받고 거의 은둔하면서 살다가 5월에 수술받았죠. 그동안 손목 인대도 파열되고 잃은 게 많아요. 스트레스 때문에 불면증까지 왔어요. 정부도 병원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고, 세상이 다 부정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까 보육원 과장님이랑 선생님만 주구장창 찾아갔어요.
혼자 사는 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저처럼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겨요. . 보호종료 후에 이런 공백이 생기지 않게 후견인 제도가 개선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예외적인 상황에선 본인이 혼자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어요.
그럴 때마다 보육원 선생님은 ‘보육원 출신은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야. 오히려 또래 애들보다 풍족할걸? 누가 불쌍하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너희도 우리처럼 돈 많니’라고 당당하게 나서라’고 말해주셨어요. 고등학교에 가서야 비로소 학기 첫날에 반 친구들에게 “나 보육원 출신이야”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몸의 멍과 흉터는 지워졌어도 부모에게 받았던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갓 성인이 된 후 김민정은 아버지로부터 ‘혼자 잘 자라줘서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말 대신 ‘생활비 좀 달라’는 말을 들었다.
김민정이 어릴 때부터 바라온 미래는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다. “하하호호 시끌시끌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집을 꾸미고 싶어요.”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랑 정말 풋풋하고 귀엽게, 꽤 오래 사귀었어요. 1년 정도 만났을 때 남자친구 군입대를 앞두고 (남자친구) 어머니께 처음 제 이야기를 해드렸어요. 그분께서 그동안 계속 제게 부모님에 대해 질문하셨는데 매번 둘러대고 거짓말했거든요. 근데 그분이 제가 자라온 이야길 듣고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야. 너는 결혼식 작게 해야겠다”였어요. 그리고 “너는 상대방 부모님이 좀 세야겠다. (남들이) 너 못 건드리게”였어요.
절 그렇게 깎아내리실 줄은 몰랐어요. 저는 노력 되게 많이 했거든요. “이렇게 자랐지만 할 수 있는 게 많다”라는 걸 보여주려고요. 남자친구 집에서 놀고 나서도 굳이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했어요. 내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은 사이가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해도 결국 돌아오는 건 “너 이젠 우리 집 오지 말아라”는 한마디 였어요.
최근에 제가 치과 진료비를 최대 1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큰맘 먹고 치과에 갔어요. 선천적으로 이가 안 좋아서 임플란트를 해야 했거든요. 담당자분께도 시간 맞춰 와달라고 말씀을 드렸죠. 근데 그분이 약속 시간이 한 시간 넘게 지났는데 전화도 안 받는 거예요. 겨우 통화가 됐는데 “카드 번호만 알려줘도 결제 가능하다니까 안 갈게요” 하더라고요. 전 병원 직원이랑 다른 환자들에게 민폐 덩어리가 돼서 눈치를 보는 동안, 본인은 그냥 여기까지 오는 게 귀찮다고 당일에서야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한 거죠.
한두 번이 아니에요. 처음에도 다짜고짜 “과거 얘기 좀 해보세요” 하기에 기분이 나빠서 “조금 불친절하신 것 같네요”라고 했더니 “일이니까”라고 대꾸하더라고요. 한 번은 제가 너무 열이 나고 아파서 아침 일찍 전화를 건 적이 있어요. 근데 바로 거절하고 문자로 “오전 9시~오후 6시 사이에 연락해주세요”라고 답장이 온 거에요. 너무 서러웠어요. 당장 와달라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약값이나 병원비 지원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려던 건데 너무 매몰찼어요.
물론 제가 필요했던 게 지원금이긴 해요. 하지만 지원제도의 가장 큰 취지는 옆에서 지켜줄 어른을 만들어주겠다는 것 아닌가요? 정말 필요할 때 옆에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정혜세가 신생아 때부터 자랐던 서울 성동구의 보육원 이든아이빌은 2010년까지 0~3세 아이만 키우는 영아원이었다. 그는 “영아원 시절을 아는 아이들이 시설 안에서도 ‘성골’”이라며 농담했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정혜세는 집 근처 작은 공원의 전망대를 퇴근 후에 종종 올라가곤 한다.
그나마 학생이었을 땐 제가 좀 무례하게 대답해도 “애가 사춘기라 예민하네” 하면서 넘어가 줬거든요? 성인이 되고 나니까 함부로 쳐내기가 더 힘들어졌어요.
요즘은 사람들이 물어봐도 대꾸를 안 하게 돼요. “(가족들과) 집에서 살아요?” 하고 물어보면 “아, 예, 그냥 혼자 살아요.”하고, “부모님은?” 이러면 “뭐, 알아서 잘 사시겠죠.” 이런 식으로 넘겨요.
대한민국에서는 뭐만 하면 ‘부모님’으로 끝나는 거예요. 확실히 부모님이 있다는 게 디폴트(기본값)에요. 없다는 게 창피하거나 부끄럽진 않은데, 뒤에서 사람들끼리 제 얘기를 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런 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어요. 저는 살면서 남의 부모님이 궁금한 적이 없었거든요.
부모님이 없는 게 제게 꼭 ‘마이너스’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집도 좋은 곳을 지원받아서 살고 있고요. 물론 부모님이 있으면 ‘플러스’일 수도 있지만 늘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부모가 자기 애들을 학대하거나 빚을 물려주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제 친구는 미술 쪽에 재능이 있어요. 그런데 자기 부모님께 “저 부모님 가게 물려받기보다 미술을 하고 싶다”라고 얘기했다가 곧바로 거절당했어요. “무슨 미술이야. 와서 일이나 도와. 우리한테는 네가 짐이야” 이런 식으로 얘기하셨다더라고요. 어떻게 반응을 해야 될지 딜레마였어요. 친구 부모님을 욕할 수도 없잖아요.
국회도서관에서 한국사 코너를 살펴보는 이동권. 그가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겠다고 하자 “안된다”며 단칼에 잘랐던 이모와 이모부는, 아들(동권의 사촌 동생)이 음향을 전공하겠다고 하자 “그래. 사람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해”라며 응원했다. 이동권은 결국 기술대학인 한국폴리텍대학의 디자인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라온제나 활동을 하면서 그는 국회 의원회관을 돌며 정책 제안을 하거나 간담회에 참석하곤 했다.
‘라온제나’를 접하고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였어요. 먼저 들었어요. 그동안 주변 애들은 다 정상적으로 엄마 아빠 밑에서 자라는데 나는 왜 이모 밑에서 이렇게 커야 하는지 의문이었거든요.
그런데 저처럼 ‘가정위탁’이란 울타리 안에서 지원받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고, 활발하게 잘 지내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처음 본 거죠.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나도 나중에 저렇게 잘 자립할 수 있겠구나’라는 안도감이 가장 컸어요. 그전까지는 제 미래가 아예 어두컴컴한 느낌이었다면, 그때부터 길이 여러 갈래 보이는 느낌이었죠.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을 하나 고르기엔. 각자의 차이도 너무 커요. 보호시설과 가정위탁이 다르고, 특히 가정위탁의 경우에는 집집마다 환경이 더 달라요. 어떤 집은 보호가 종료된 뒤에도 정말 친자식처럼 여길 수 있지만, 보호기간에만 보살피는 집도 있죠. 지금도 지역별 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가장 연락이 안 되는 아이들이 가정위탁이래요. 보호자가 연락을 안 받으면 방법이 없으니까요.
당사자에게 여러 선택지를 주고 고르라고 하기보단, 차라리 아이들이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센터를 활성화하고 그곳에서 각 아이에게 맞는 자원을 배분해 준다면 좋겠어요. 사실 갓 스무살 된 친구들은 자기에게 뭐가 부족한지 자체를 알기 어려워요. 특히 돈 관리는 정말 닥쳐봐야 알거든요. 저도 대학생 때 신용카드 발급이 된다기에 해봤다가 연체된 적도 있었어요. 보호가 종료되기 전, 아직 보호 중일 때부터 지원이 시작되면 아이들이 덜 헤맬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차별화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취재: 조유라 이승우 조민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수진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 디벨로퍼
▽인터랙티브 디자인: 여하은 차설 인턴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품 밖으로 내몰렸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디지털 콘텐츠로 구현한 ‘그 아이들이 버려진 곳’(original.donga.com/2023/poom1)과 ‘사운드트랙: 품을 잃은 아이들’(original.donga.com/2023/poom2)로 각각 연결됩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조민기 기자 minki@donga.com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