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인기전공 피부-안-성형외과 대형병원 연봉 3배 개업의 선호 중증-응급치료 인력은 턱없이 부족 “이대로 방치하면 필수의료 붕괴”
임신 25주 만에 태어나 비수도권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미숙아 기쁨이(가명)는 생후 3개월 차인 6월 망막에 출혈이 생겼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영영 시력을 잃을 수 있는 ‘미숙아망막증’이 의심됐지만, 병원에 이 병을 진료할 수 있는 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 기쁨이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 200km 이상 떨어진 서울 소재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안과는 흔히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재영(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인기 전공과목 중 하나다. 매년 새내기 의사들이 이들 전공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정작 이들 과목에서도 소아 진료나 중증·응급 질환 진료 인력은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수의료 회복을 위해선 단순히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비인기 과목에 대한 지원만 늘릴 게 아니라 ‘풍요 속 빈곤’에 빠진 인기과목에 대한 정교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의사 부족에 미숙아망막증 ‘서울 쏠림’ 심각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백종헌 의원(국민의힘)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숙아망막증을 진단받은 신생아는 총 1만1999명이다. 지난해 전체 출생아 20명 중 1명(4.8%)은 이 병으로 치료를 받은 셈이다.
하지만 서울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미숙아망막증 진료 인프라가 붕괴된 상태다. 대전의 경우 2013년엔 미숙아망막증 환자 379명을 진료했지만 지난해엔 44명밖에 보지 못했다. 울산 경북 전남 등은 지난해 미숙아망막증 진료 건수가 20건 안팎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기쁨이처럼 ‘원정 진료’를 받는 신생아가 매년 수천 명에 이른다. 지난해 서울 소재 병원에서 진료한 미숙아망막증 환자는 총 5313명이었는데, 주소지가 서울인 미숙아망막증 환자는 2068명에 불과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원정을 온 미숙아망막증 환자만 3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을 운영하면서도 미숙아망막증을 볼 수 있는 의사가 한 명도 없는 병원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교수 1명이 여러 병원의 NICU를 돌며 미숙아망막증을 진료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김상진 삼성서울병원 안과 교수는 “소아 안과 분야는 고가의 특수 장비가 필요하고, 인력도 성인 환자를 볼 때보다 두세 배로 필요한데 책정된 진료비는 낮아 병원들도 투자를 꺼린다”고 말했다.
● 의사 부족해 시술로 충분한 환자 수술하기도
다른 인기 과목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판독하는 영상의학과는 대표적인 인기 과목이지만, 영상 ‘인터벤션(중재)’ 분야는 인력난에 허덕인다.
정형외과 전문의도 도수치료나 동결건(이른바 ‘오십견’) 등 개원가 수요가 높은 탓에 소아나 중증외상 환자를 수술하는 의사를 찾기 어렵다. 특히 골격 기형을 가진 아이를 수술하는 소아정형외과 전문의는 전국에 20여 명에 불과하다. 올해 61세인 조태준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소아정형외과 전문의 가운데 상당수는 5년 안에 은퇴한다”라며 “이대로 방치하면 가물에 콩 나듯 지원자가 나타나도 가르칠 사람이 없어서 포기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성형외과도 마찬가지다. 안면 외상이나 기형 환자를 상대로 재건 수술을 하는 의사는 대표적인 ‘3D 직종’이다. 특히 뇌종양 제거 후 재건 수술은 난도가 높고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기에 의사의 부담이 크다. 정지혁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성형외과 교수는 “국내 최고라는 우리 병원도 소아성형외과만 다루는 펠로를 구하지 못해 다른 분야와 순환근무를 시켜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 과목 아닌 질병 따라 필수의료 재정의해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9월 기준 국내에서 활동 중인 ‘피안성’ 전문의 8577명 중 가장 중증인 환자들이 가는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830명(9.7%)뿐이다. 최근 5년 새 ‘피안성’ 전문의는 1158명 늘었는데, 늘어난 의사 중 95%(1100명)가 동네 의원에서 근무한다.
소아·중증·응급 분야에서 일하면 업무 부담은 큰데 보상은 적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안과를 예로 들면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의 소득(약 1억5000만 원)은 동네 의원 의사의 3분의 1 수준이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어떤 과목을 전공했는지가 아닌 ‘어떤 질환을 진료하는가’로 필수의료의 정의를 새로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수익성이 낮지만 생명이 오가는 진료를 하는 의사에 대해선 전공에 관계없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병원 현장에서 나타나는 ‘시장 실패’를 바로잡는 게 정부가 할 역할이란 지적도 나온다. 소아 사시 환자를 진료하는 김응수 중앙대 광명병원 안과 교수는 “병원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은 환자를 보지만 병원에 가져다 주는 수익은 하위권”이라며 “이런 구조가 개선돼야 소아·중증 진료 인프라가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종헌 의원은 “단순히 일부 과목에 대한 투자만 늘릴 게 아니라 국민 생명에 꼭 필요한 진료 분야들을 꼼꼼하게 따져 세밀한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