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55달러 총 18조원에 지분 인수 일본제철 조강량, 세계 4위→3위로 ‘규모의 경제’ 강화땐 포스코도 영향 美 정부심사 등 최종까진 난항 전망
산업 부흥기인 20세기 미국의 자존심이었던 철강업체 US스틸이 일본제철로 넘어간다. 미국과 일본 산업화의 상징인 양 사가 손잡으면서 세계 3위 철강업체로 발돋움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미국에서는 “핵심 기업을 외국에 빼앗겼다”는 반발이 일고 있어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기까진 난항이 예상된다.
18일 일본제철은 US스틸로부터 주당 55달러, 인수대금 141억 달러(약 18조1000억 원)에 지분 전량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앞서 8월부터 잠재 인수 후보자로 거론된 미국 철강사 클리블랜드 클리프스가 제안했던 주당 35달러를 크게 상회하는 금액이다. 이 때문에 뉴욕증시에서 US스틸 주가는 25%가량 뛰었고, 뒤이어 열린 일본증시에서 일본제철은 4% 안팎의 하락세를 보였다.
데이비드 버릿 US스틸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합병으로 고객의 새로운 요구에 맞추는 역량과 혁신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글로벌 철강 회사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강량(쇳물 끓여 불순물이 제거된 상태의 철강 생산량) 기준 세계 4위인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로 1위 중국 바오스틸, 2위 룩셈부르크 아르셀로미탈에 이어 3위에 안착하게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 전기자동차(EV)용 강철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US스틸의 생산 설비와 일본제철의 기술력이 합쳐지면 미국 자동차업체를 상대로 판매를 늘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본사를 둔 US스틸은 1901년 존 피어폰트 모건이 ‘철강왕’으로 유명한 앤드루 카네기의 카네기스틸을 사들여 세운 회사로, 122년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가격 경쟁력 등에서 한국과 중국 기업에 밀리며 내리막길을 걸어 현재는 철강업계 27위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US스틸을 살리기 위해 포스코를 포함한 해외 철강 기업에 25% 고율 관세를 매기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산 철강을 사용한 기업에만 보조금을 몰아주는 등 보호 장벽을 높였지만 결국 일본에 인수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0세기 전반 미국 경제 성장의 주역이 사라지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했다.
조강능력을 세계 7위(2022년 기준)에서 2030년에 5위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한 포스코는 일본제철의 대형화가 반갑지 않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엔저 현상으로 일본 철강사들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는데, 규모의 경제까지 강화되면 한국 철강사들의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해외 기업의 주요 투자에 대해 미 정부의 심사를 통과해야 해 최종 인수 성사까지 난항이 예상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내 인수를 희망했던 미 철강노조도 “규제당국이 국가안보 이익에 이번 거래가 부합하는지 조사하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