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독립만세 기념공원에서 천안 병천중 3학년 2반 학생들이 체육 중심 융합 수업의 마지막 과정인 만세를 부르고 있다. 지도교사와 퇴직교사 및 천안 교통생태시민모임 회원들이 함께 했다. 병천=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겉으로만 지덕체(智德體)인 교육을 체덕지(體德智)로 바꿔야 한국 교육이 산다.”
한국의 뜻있는 교사들이 공감하는 한국 교육 개혁 방법론이다. 지덕체는 한국 교육을 받치는 절대적인 이념으로 군림해왔지만, 이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더 이상 한국 교육의 변화는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체육 교사를 중심으로 간간이 시도되는 체육 중심 융합 수업이 체덕지 교육의 방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충남 천안시 병천면 병천중에서 2∼3학년 전체가 참여한 ‘유관순 열사 순국 103주년 추모 역사 탐방 자전거 타기 대회’가 단위 학교에서 체덕지 교육의 모델이 됨직하다. 기자는 6일 1∼4교시 동안 이뤄진 3학년 2반 학생들의 체육 중심 수업을 참관했다.
● 체육-역사-국어-영어-과학 융합 수업
학생들은 학교 주변의 천안 역사 문화 둘레길 일부를 자전거로 탐방하며 체육 역사 국어 영어 과학이 어우러진 융복합 수업을 했다. 이들이 달린 거리는 15km 남짓. 이 구간에는 가파른 오르막길과 완만한 내리막길, 병천면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고즈넉한 산책길도 포함됐다.
16명의 학생은 4시간여에 걸쳐 유관순 열사 생가와 유 열사가 다녔던 매봉 교회, 조병옥 박사 생가, 홍대용 과학관, 아우내 장터를 돌았다. 매봉 교회에서는 박윤억 담임목사로부터 구한말 상황과 유관순 열사가 독립운동에 나선 이유를 들었다.
설명을 들은 후 학생들은 교회에서 ‘내가 유관순이다’라는 주제로 5줄짜리 유언을 작성했다. 강은규 학생은 “내 삶이 여기서 끝나도 우리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고, 내 꽃은 지금 지지만 독립의 꽃은 언젠가 피어나리라”라는 유언을 적었다. 작성한 유언은 영어 시간에 영작하게 된다.
학생들은 이 자리에서 사전에 조사한 ‘우리 동네 병천 역사 탐방’의 주제인 역사 인물 유관순 열사, 조병옥 박사, 홍대용 실학자에 대해 발표했다. 수업을 진행한 김광섭 교사(국어)는 반 학생 골고루 소감을 밝힐 수 있게 했다. 이민규 교사(체육)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시대와 분야를 알도록 관련 교과 교사들이 상의한 끝에 독립운동가, 정치인, 실학자를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 모바일 교육 앱 활용 과제 풀어
3학년 2반 학생들은 유관순 생가에서 30여 분간 자전거를 타고 조병옥 생가를 거쳐 홍대용 과학관에 도착했다. 홍대용 과학관에서는 과학관 견학과 체험을 통해 과학 교사가 내준 과제를 풀었다. 과제는 사전에 모바일 교육 플랫폼 앱인 ‘띵커벨’과 ‘페들렛’에 제시됐다.
달 탐사선 탑승, 무중력 체험, 360도 자전거 타기 등은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홍대용 과학관을 떠난 학생들은 15분 동안 3km를 달려 아우내 독립 만세 기념공원에 도착해 만세를 부르는 것으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만세에는 체육 중심 융합 수업을 지지하는 퇴직 교사들과 천안 생태교통시민모임 회원도 함께 했다. 이들은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구간에서 안전을 담당했다.
탐방을 마친 학생, 교사, 도우미들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천안 병천 순대 거리의 한 순댓국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김영아 학생은 “자전거 타기가 힘들어서 완주하지 못할까 걱정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완주했다”면서 “자신감이 늘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이 행사 준비를 위해 1학기부터 자전거 타기를 가르쳤다.
● 학부모와 교사들의 지지가 융합 수업 동력
병천중은 천안시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도심에서 차로 40분이나 걸려야 가는 곳에 있는 농촌 학교다. 중학교와 고교가 한 울타리에 있으며 한 학년 2개 반씩 총 6개 학급에 전교생은 107명에 불과하다. 이 학교는 천안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사교육 환경이 불리하지만, 이런 환경은 오히려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는 동력이다. 체육 중심 융합 수업도 학부모의 학교 정책의 전적인 신뢰와 모든 교사가 한국 교육을 바꾸기 위한 다양한 노력의 산물이다.
왜 자전거이고 왜 체육인가에 대해 이민규 교사는 “자신이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나 도구가 많다는 건 자기 주도성을 높이고, 이는 효율성을 올려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쉽게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통학 거리가 먼 학생들의 자전거 통학은 근육의 적절한 자극으로 스트레스 해소와 심리적 여유를 갖게 한다”고 설명했다.
진학에만 매몰돼 길러주지 못하는 덕(德)성과 인내력도 체력과 관계가 깊다고 말한다. 이 교사는 “근력, 근지구력, 심폐 지구력이 있는 학생들은 자신감이 있고 여유가 있다.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에게 봉사하려면 자기 희생과 에너지가 요구되는데 기본적으로 체력과 중간에 포기하려는 걸 참고 오래 견디는 지구력이 필요하고 이는 덕성의 바탕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 학교에서 체육과 체육교사의 위상은 미미하다. 대다수 학생, 학부모와 일부 교사들의 진학 위주 우선 사고 때문이다. 체육 교육에서 길러주는 인성과 소통 배려 등은 다른 교과의 성취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타 교과 교사들의 이해와 참여 없이 융합 교육은 힘들다.
병천중의 체육 융합 수업은 변영우 교장을 비롯해 전 교원의 지지 덕분에 가능했다. 변 교장은 “체육 중심 융합 수업은 자전거 타기로 그치는 게 아니라 왜 탐방하는지를 아이들이 생각하고 자전거 원리, 영어, 역사, 과학, 국어 등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어서 교육적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병천=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