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애플이 처음 에어팟을 출시했을 때, 대다수 사람들의 이목은 콩나물 형태의 이어폰에 꽂혔다. 게다가 음향 특성이 확고한 비츠 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한 뒤 내놓은 제품이어서 제대로 낸 음향을 낼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몰렸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형태의 이어폰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런데 애플은 음향의 완성도보다는 누구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품질을 지향했고, 에어팟을 애플의 음향 시스템으로 편입하는 데 더 무게를 뒀다. 그 결과, 6년이 지난 지금은 아이폰을 쓰는 사람이면 에어팟을 쓰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다이슨 존 공기정화 헤드폰, 공기청정기가 내장된 형태의 헤드폰이다 / 출처=IT동아
이번에 다이슨이 출시한 헤드폰, 다이슨 존도 애플이 에어팟을 출시했을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헤드폰이지만 공기청정기까지 결합된 독특한 외형이 첫 번째고, 음향기기 전문 제조사가 아닌 곳에서 출시한 음향 기기라는 점도 비슷하다. 그리고 독보적인 하드웨어 플랫폼을 갖췄다는 점도 애플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다이슨은 애플처럼 음향 플랫폼을 가진 것도 아니고, 기존에 연동될만한 시스템도 없다. 다이슨 존을 직접 사용해 보면서, 다이슨이 어떤 메시지를 담았는지를 생각해봤다.
모터 만드는 기술력으로 스피커를 만들다
다이슨 존 헤드폰의 인터페이스, 양쪽의 물리 버튼과 다이얼, 헤드폰 하우징 중앙의 터치 버튼으로 기기를 제어한다 / 출처=IT동아
무선 헤드폰인 만큼 기기 전반에 기기 제어를 위한 버튼과 인터페이스가 마련돼있다. 우선 제품 왼쪽에 충전을 위한 USB-C 단자가 있고, 약 세시간이면 100%까지 충전된다. 초기 연동은 블루투스 버튼을 눌러서 시작하고, 네 방향 패드를 사용해 블루투스 연결과 핸즈프리 통화, 음성비서 연결, 사운드 및 풍량 조절 등을 지시한다. 드라이버 하우징의 중앙부를 탭하면 주변음 허용 모드가 켜지고, 다시 탭하면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이 활성화된다. 드라이버 하우징을 돌리면 필터를 삽입할 수 있다.
하우징을 열면 공기정화 필터를 장착할 수 있고, 공기 청정 기능을 쓸 때는 별도의 바이저를 장착하면 된다 / 출처=IT동아
오디오 제품에서 가장 중요한 음향 장치는 다이슨이 6년 동안 500개의 시제품을 만든 끝에 설계했다. 스피커 드라이버는 맞춤 제작된 40mm 16옴 네오디뮴 스피커 드라이버를 사용했고, 6Hz에서 21kHz의 가청주파수를 지원한다. 또한 왜곡을 줄이기 위해 스피커가 초당 4만8000회로 출력하고, 노이즈 캔슬링과 결합해 고조파 왜곡을 들리지 않는 수준으로 낮춘다. 또한 8개의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마이크가 주변 소음을 초당 38만4000회 모니터링해 주변 소음을 크게 잡는다.
무게 상당하지만, 착용감 좋고 중립적 음질 인상적
음향기기 마니아들이 가장 궁금해할 부분은 음향 품질일 것이다. 음향기기 기업들은 십수 년에 걸쳐 제품을 튜닝하고, 자체적인 노하우로 음향을 완성한다. 반면 다이슨은 이번에 처음 음향기기를 내놓는 만큼 음향의 성격을 짐작할 수가 없다. 음원의 재생능력은 어떨지 어쿠스틱과 클래식, 락, 힙합, EDM 등 다양한 장르를 들으며 개인적으로 제품을 평가해 봤다.
마이다이슨 앱으로 다이슨 존 헤드폰의 세부 기능과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 출처=IT동아
가장 먼저 들어본 어쿠스틱 계열의 소프트락이다. 평이한 음색이 주류인 만큼 튀지 않고 전체 음역대의 균형이 잘 잡힌 느낌이며, 드럼의 심벌조차 잔잔하게 들릴 정도다. 뉴에이지나 클래식 등의 음원도 해상력이 상당하며, 음원을 크게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제공하는 느낌이다.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재생 능력을 선호한다면 긍정적일 것이다.
힙합의 경우 목소리가 배경음에 묻히지 않고 명료하게 살려내는 점은 인상적이지만, 반대로
특유의 밋밋한 감이 있다. 락 역시 기타나 드럼 소리, 분리된 음원 하나하나가 잘 들리지만 박진감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95-100데시벨 수준의 큰 볼륨에서도 소리가 뭉개지지 않고 또렷하게 소화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타격감이 주요한 음원이라면 EQ에서 베이스 부스트를 적용하면 유의미한 변화가 있다.
이어패드는 교체할 수 있으며, 내부에 드라이버가 곧바로 노출된 형태다 / 출처=IT동아
전반적으로 다이슨 존의 음향 재생 품질은 특정 음역대를 강조하기보다는 전반적으로 고르게 균형이 잡혀있다. 음향기기를 평가할 때 거의 쓰지 않는 ‘플랫 하다’ 라는 표현이 다이슨 존에게는 적절한 표현이지 싶다. 노이즈캔슬링의 경우 실내 환경에서만 사용해 제대로 테스트하지 못했지만, 헤드폰의 기본적인 차음력도 상당한 데다가 노이즈캔슬링 시 추가로 소음 억제 느낌이 날 정도이므로 야외 등에서도 충분히 쓸만할 것 같다.
착용감은 괜찮지만, 무게가 상당하다. 일반적인 헤드폰이 200~250그램, 알루미늄 하우징으로 무거운 편에 속하는 에어팟 맥스도 385그램이다. 다이슨 존의 경우 공기청정기를 내장하다 보니 기본 591g, 바이저 포함 시 648그램으로 상당히 무겁다. 마이크로 스웨이드와 세 방향으로 잡아주는 헤드밴드의 완성도와 품질은 좋지만, 무게 부담이 제법 있고 머리 매무새를 다듬어놨다면 밴드에 눌릴 정도다. 휴대가 가능하긴 해도, 실내에 편한 곳에 누워서 듣는 용도에 더 적합하다.
다이슨 존, 공간에 대한 철학 보여주는 제품
다이슨 존은 ‘다이슨의 기술력으로 헤드폰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만든 제품이다 / 출처=IT동아
다이슨 존은 그간 다이슨이 쌓아온 여러 솔루션 중 빈 공간인 ‘소리’를 위한 제품이다. 그간 다이슨의 제품을 살펴보면 청소기를 통한 실내 청결과 공기청정기와 가습기를 활용한 대기 품질, 날개 없는 선풍기를 통한 환기, 실내 분위기를 위한 조명까지 다 공간을 위한 제품이었다. 다이슨 존은 여기에 소리라는 요소까지 사로잡는 방안을 더한 것이다. 제품의 외형이나 콘셉트가 특이한 이유는 수많은 경쟁 기업들 사이에서 돋보이기 위해, 가장 자신 있는 공기청정을 더하는 방식으로 이목을 끌어본 게 아닐까 싶다.
제품의 가격은 86만 9000원 대로 음향 전문 브랜드의 헤드폰의 가격을 생각해도 상당히 고가다. 특히나 헤드폰은 선택지도 많고, 또 브랜드별 특징을 보고 고르는 경우도 많아서 선택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지만 다이슨이 음향 기술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드웨어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추후에는 의미 있는 진전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싶다.
동아닷컴 IT전문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