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난해 3월부터 가동이 중단돼온 러시아 현지 공장을 단돈 1만 루블(약 14만 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설립과 운영에 모두 1조 원 넘게 투자해온 공장을 헐값에 넘겨주게 된 것이다. 향후 2년 내 다시 사들일 수 있는 바이백(buyback) 조건이 붙긴 했지만 전쟁 종료 시점과 이후 가동 여부가 불투명한 데다 재매입 시에는 시세로 계산해 지불해야 한다.
현대차의 러시아 철수 결정은 유럽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여파가 한국 기업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현대차는 불안정한 현지 상황 속에서도 러시아 시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버텨왔지만, 전쟁 장기화로 인한 누적 손실이 올해 3분기까지 6600억 원 규모로 불어나자 결국 공장을 현지 업체에 넘기게 됐다. 앞서 닛산자동차는 1유로, 프랑스 르노는 2루블에 현지 법인을 러시아 측에 매각했다. 다논과 칼스버그 등은 러시아 정부에 자산을 사실상 압류당하거나 강제 국유화 절차를 밟고 있다. 본전도 못 건진 채 사실상 빈손으로 쫓겨나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이로 인해 촉발된 갈등 격화로 글로벌 기업들이 받게 될 부정적 여파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금융거래 차단, 이에 반발한 러시아의 외화 통제 등으로 대외 영업환경은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 극단적 유혈 충돌은 아니더라도 미중 간 ‘소리 없는 패권 전쟁’ 속에 수출 통제 같은 유무형의 장벽 또한 전례 없는 수위로 높아졌다. 미국의 대중 첨단기술 장비 반입 금지, 중국의 핵심 광물과 희토류 수출 규제 발표가 경쟁적으로 쏟아져나오는 상황이다. 주요국이 산업, 통상 조치를 압박 수단으로 쓰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볼모로 잡힐 가능성이 상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