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장
‘청룡의 해’라는 2024년이 다가오고 있다. 수출을 통해 성장한 우리에게 세계 경제의 성장 회복 못지않게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이 중요하다. 내년도 세계 경제는 물가상승세가 둔화되며 2%대 후반의 완만한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가 많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 경쟁으로 대변되는 지정학적 위험은 상수로 자리 잡았으며, 전략산업은 파편화를 넘어 블록화로 가는 추세다. 광물자원에서 중간재,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공급망 단절 리스크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185개 품목의 특정국 의존도를 2030년까지 50% 이하로 낮추는 ‘산업공급망 3050 전략’을 최근 발표했다. 주요 물품의 수입처 다변화와 함께 핵심 품목에 대한 연구개발(R&D) 확대, 생산시설 구축 및 자원저장기지 확충도 추진한다. 천연자원이나 금융자본이 없었던 한국 경제가 혁신기술을 통해 성장 신화를 창출했듯이, 2024년에는 공급망 리스크를 소부장(소재·부품·장비) R&D로 대응할 때다.
먼저, 소재 국산화를 위한 기술 개발이 더욱 중요하다. 이산화티타늄과 같이 가격 때문에 특정국에 의존하는 품목은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탄소섬유와 같이 특정국 대비 기술 열위로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은 원천기술을 확보한다. 실리콘 음극재로 흑연을 대체하는 것처럼 천연자원 대체재를 개발해 배터리 재활용, 폐플라스틱 활용 등 재자원화 기술과 희토류 사용량을 파격적으로 저감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
셋째, ‘소부장 슈퍼을(乙) 기업’을 육성한다. 소부장 ‘전문기업-으뜸기업-슈퍼을 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사다리 전략을 통해 네덜란드 반도체장비 기업 ASML처럼 압도적 기술력을 갖춘 공급자를 육성한다.
끝으로,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성화한다. MIT랩(미), 보잉사(미), 프라운호퍼(독) 등 해외 기관과 우리 기업 및 공공연구소가 함께 특정국 의존도가 높은 공통 품목을 발굴하고, 밸류체인 단계별로 상호 보완할 수 있는 국제 공동연구를 확대해 소부장 생태계의 완결성을 갖춰 나간다.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활활 타오르게 한다. …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하라.”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의 또 다른 역작 ‘안티프래질(Antifragile)’에 나오는 문장이다. 외부 도전에 맞서 오히려 강고해진다는 의미다. 일상화된 공급망 리스크에 대응해 우리 소부장 기업이 기술 발전을 가속화함으로써 한국 경제의 성장 촉진과 경제 블록화 대응의 해법이 마련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