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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 평가로 부실의심학술지 퇴출… 연구비 지원 선정땐 사전평가 강화”

입력 | 2023-12-21 03:00:00

[AI發 논문 인플레]
의학한림원 등 대책 마련 안간힘
내년 ‘화이트리스트’ 공표할 계획




“부실의심학술지, 약탈적 학술지에 투고를 하는 한국 학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2020년 익명의 해외발 이메일이 대한수학회에 접수됐다. 일부 국내 학자의 부실의심학술지 투고 건수가 늘고 있으며, 이러한 행위가 대다수 국내 학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대한수학회는 이후 회원들에게 부실의심학술지 투고 자제를 강조하는 이메일을 보내는 등의 캠페인을 진행했다. 각 대학과 한국연구재단 측에도 논문 평가 등에서 부실 의심 학술지를 제외해 달라는 권고를 보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질 낮은 논문을 양산하는 부실의심학술지의 유혹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대한수학회 측 설명이다. 상업적 이익을 꾀하는 오픈 액세스 저널들이 늘면서 부작용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종일 대한수학회 회장(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은 “부실의심학술지 투고는 학계 생태계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수학회는 15일 ‘2023년 수학 분야 학술활동 건전성 강화 포럼’을 열고 엄정한 평가 절차를 갖춘 학술활동, 정량적 지표가 아닌 질적 평가 등을 연구기관과 연구자들에게 권고했다. 내년 상반기(1∼6월)를 목표로 질적으로 인정할 만한 ‘화이트리스트’ 학술지 목록도 회원들에게 공표하기로 했다.

국내 과학계에서는 이윤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면서 출판 윤리를 따르지 않는 학술지를 겨냥해 다양한 조치를 내놓고 있다. 엄밀하지 못한 평가를 거친 논문의 대량 발간은 단순히 연구자 개인의 역량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학술 네트워크를 교란할 수 있어서다. 정량적 수치가 연구비 수혜나 승진 등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기 때문에 연구자들을 향한 유혹을 원천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의학한림원도 최근 연구자, 연구기관, 정부 등을 대상으로 ‘약탈적 학술지 근절을 위한 권고안’을 공개했다. △약탈적 학술지 근절을 위한 정기적인 예방교육 이수 △논문 투고 시 투명한 절차와 신뢰성 있는 학술지 선택 △연구비 지원 사업 선정 과정에 약탈적 학술지 사전평가 시행 등을 골자로 한다. 양철우 의학한림원 윤리위원장(가톨릭대 의대 신장내과 교수)는 “앞으로 의학한림원 회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제출하는 논문을 확인할 때도 약탈적 학술지 (게재 여부를) 평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은 올해 3월부터 부실의심학술지 문제 대응을 위해 ‘건전한 학술 생태계 구축을 위한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부실의심학술지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해 관련 자료를 배포하는 등 교육을 강화하고, 평가 기준을 정량적 수치가 아닌 질적 수치로 변환하고 있다. 김해도 한국연구재단 연구윤리지원센터장은 “학자들이 쉽게 논문이 게재되는 학술지에 논문을 많이 내는 이유는 결국 (정량적) 연구 업적평가이기 때문”이라며 “주요 사업에서 연구과제를 평가할 때 계량적 지표를 없애는 방향으로 평가제도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