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부산 강서구청 아동보호전담요원 박진한 씨가 한 공동생활가정(그룹홈)에서 초등학생 아이와 상담을 하고 있다.
아이가 보배인 저출산 시대에도 ‘품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유기된 아이들. 그리고 부모가 방임한 아이들까지.
올해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두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우리 주위엔 여전히 미아처럼 품을 찾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
미아 - 품을 잃은 아이들
[5] 모든 아이를 품어줄 세상
아이와 세상의 가교
“이제 두 분이서 같이 대화를 좀 하세요 어머니.”상담실 책상에 놓인 박진한 씨의 스마트폰에서 “네…” 하는 여자 음성이 나왔다. 맞은편에 앉은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길게 목을 빼고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
“엄마아!”
“아들!”
“하하 목소리가 다 컸네.”
“맞죠?”
“응…. 아들, 엄마 안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요.”
아이는 목덜미를 빡빡 문지르더니 괜히 윗옷 끝자락을 잡아 내렸다. 몸을 배배 꼬는 아이를 박 씨가 쿡 찔렀다. “네가 얘기를 해야지. ‘우리 언제 보면 좋을까’ 하고!”
박 씨는 면접 교섭 날짜를 정하는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들었다. 아직은 수화기 너머에만 있는 엄마는 과거 아이를 학대해 수감됐다가 가석방으로 출소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상태. 아이는 엄마의 칼에 허벅지를 찔린 뒤 분리돼 그룹홈(공동생활가정)에 나와서 살고 있다.
학대받았던 아이와 뉘우치는 엄마.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갈라진 두 사람은 지금 “보고 싶다”며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다. 하지만 그리워하는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엄마가 다시는 아이를 아프게 하지 않도록 단단히 교육하고 다짐받아야 하는 것. 이 가족이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모든 자원을 연계해줘야 한다. 설령 다시 위기가 생겨도 재빠르게 막을 수 있도록 오래도록 지켜보는 것 또한 그의 역할이다.
아동 보호의 ‘컨트롤타워’
부산 강서구청에는 박진한 씨를 비롯해 아동보호전담요원이 두 명이 배치돼있다.
박 씨가 전담하는 아동은 40여 명. 최소 3개월에 한 번씩 직접 만나야 하는 ‘고객’들과의 약속은 일러야 오후 3시부터 잡을 수 있다. 대개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방과 후 수업, 학원까지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좀 있는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바쁘다며 일정을 주말로 미루기 일쑤다.
지난달 21일은 오후 3시에 그룹홈 한 곳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박 씨는 이날 동행 취재에 응하기 위해 전날 야근까지 하며 급한 일들을 미리 처리해뒀지만 큰 소용은 없어 보였다. ‘두루루루’ 하며 그를 찾는 전화벨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청소년 쉼터에서는 아이가 자퇴를 하려 한다며 도움 요청이 왔다. “걔한테 학교 그만두면 자립생활관(청소년자립지원관)에서도 안 받아줄 수 있다고 얘기를 해 주셔야 돼. 네네… 상황 생기면 또 말씀 주세요.”
이번엔 ‘콜백’이 온 그룹홈 보호아동 친모의 근황 파악. “어머니, 저 박진한입니다. 그때 새로 결혼하신 분 있죠. 아이에게 혹시 이야기하셨어요? 네네… 제가 아이 만나보고 늦어도 4시 전엔 다시 연락드릴게요.”
옆자리 동료 전담요원은 위탁가정 관계자와의 통화가 20분째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심리치료를 받으려면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병원에 가서 받아야 한다고 보호자한테 말씀드렸는데, 지난번 전화해보니까 여태껏 안 받았다는 거예요.”
학교 선생님과 양육시설 상담사. 각종 ‘센터’ 관계자와 친부모, 친인척에 보호자까지. 전화 너머 사람은 모두 달랐다. 아이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이라면 모두가 ‘클라이언트’였다.
‘사건 그 후’의 삶도 중요
겨우 시간 맞춰 도착한 곳은 겉보기엔 평범한 아파트.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유기, 폭력, 방임, 지적장애 등 복잡한 사연을 지닌 남자아이 7명이 사는 그룹홈이다. 전담요원의 일 중 가장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양육 상황 점검. 아이들이 충분히 돌봄을 받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 오늘의 임무다. 이들의 일은 대부분 장기적이고 잔잔하다. 아동 유기나 아동 학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전담요원들의 역할은 ‘그 이후’를 도와주는 것이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어디에서 지내야 좋을지를 판단하고, 어떻게 지내는지를 점검하고, 언제 다시 원래의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사실 아이에게는 중요한 일”이라며 그는 웃었다.
건물 앞에 주차된 그의 차 트렁크에는 디퓨저(방향제) 재료와 슬라임 만들기 세트가 실려있었다. 이 집 아이들을 처음 만날 때에 쓰던 것들이다. 상처가 있는 아이들은 낯선 사람 앞에서 여간해선 말문을 열지 않았지만, “오늘은 너와 친해지기 위해서 찾아온 거야”라며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물건들을 하나둘 늘어놓는 박 씨에게 아이들은 천천히 마음을 열었다.
사각지대 발굴하고 ‘빈틈’ 연결
전담요원은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사각지대 아이들을 발굴해내는 것, 곳곳이 끊어진 아동보호체계의 틈을 메우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오래도록 지켜보는 것이다.기존 아동보호는 분절된 체계였다. 한국전쟁 이후 우후죽순 만들어진 고아원에 뿌리를 두고 입양, 가정위탁, 자립지원, 보호아동 양육 등을 모두 민간이 주도하다 보니 복잡한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보호 대상 아동 발굴과 상담, 지원, 사후관리도 전부 따로 이뤄졌다.
2019년 정부가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선포한 뒤에야 전 과정을 공공에 통합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시군구가 아동보호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되면서 아동보호전담요원 제도도 이듬해 도입됐다.
전담요원 인원이 충분한 시군구에서는 아이들의 보호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집단지성이 발휘될 수 있다. 10월 17일에 찾은 서울 노원구청에선 아동보호팀이 내부 사례회의를 열고 현재 그룹홈에서 지내는 아동의 퇴소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참석한 아동보호전담요원은 전원 6명, 서울 시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원이다.
“아동은 친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주 좋은 라포(친밀함)를 형성하고 있고, 친부는 10월 12일에 친권 및 양육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양육 의지가 확고해서 퇴소에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담당 요원의 ‘2분 브리핑’이 끝나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 질문과 조언을 쏟아냈다.
“앞으로는 원가정이 있는 동작구가 관리해야 하는 집이니까, 가정 방문을 갈 때 아예 시간을 맞춰서 같이 가시는 게 나을 거예요.”
”가족 상담 2회기는 너무 짧아 보이는데요. 저는 예전 사례 때 최소 네 번은 했어요.”
“이 사례는 저도 처음에 관여했었는데요. 어머니가 친권이랑 양육권은 포기했는데, 나중에도 채무 관계를 빌미로 가정에 개입할 수 있어서 잘 대처해야 할 것 같아요.”
문제는 이런 일이 가능한 시군구가 드물다는 것이다. 전담요원 제도가 도입된 지 3년이 지났지만 기초지방자치단체 229곳 중 73곳은 전담요원이 단 한 명이거나 아예 없는 실정이다. 두 명에 불과한 곳도 부산 강서구를 비롯해 51곳이나 된다.
반면 이들이 전담해야 할 ‘아동보호’의 범위는 급격하게 확장됐다. 이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자기 아이의 입양을 의뢰한 친부모를 상담하는 일이다. 70년간 민간이 맡아온 국내 입양 업무 일부분이 2021년부터 전담요원들에게 갑자기 넘어간 것이다. 전담요원들은 낯선 ‘입양실무 매뉴얼’ 책을 붙잡고 한부모 지원제도와 입양 절차를 부모들에게 설명해줘야 했다.
아이를 돌보면서 부모도 챙기다 보니 박 씨는 상반된 상황에 자주 직면했다. 2년 전 미혼모시설의 한 여성이 그에게 입양 상담을 요청해왔다. 여성은 4차 상담 때 마음을 바꿔 아이를 데리고 퇴소했다. 그리고 다음에 들려온 소식은 ‘아동학대 신고’였다.
‘내가 막을 수 있었던 일인데….’ 박 씨는 소식을 듣자마자 허탈감에 빠졌다. 지역 복지시설을 연계시켜봤지만, 그 시설도 난감함을 호소했다. 운전대를 잡고 복지시설을 오가는 동안 ‘그냥 입양을 보내는 게 아이에겐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만 이어졌다.
박진한 씨가 강서구청 별관에서 열린 학대 피해 아동의 작품 전시회에서 전시물을 옮기고 있다.
한번은 미혼모 가구에서 아이를 분리하고 나서 전화를 받았다. 아이 삼촌이라던 그 사람은 “내가 조폭인데, 당신 집을 알고 있으니 처와 자녀들 조심시키는 게 좋을 거요”라며 위협했다.
이런 협박을 당해도 대응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한 팀에 2명이 전부여서 2인 1조 대응도 언감생심이다. 부서 예산으로 호신용품을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박 씨는 지인인 경찰에게 “내가 문제없이 살 수 있는 호신용품이 뭐가 있느냐”고 물었고, ‘호루라기’가 전부라는 답이 돌아왔다.
최저임금 처우의 시간제 공무원
‘아동보호의 컨트롤타워’라는 타이틀을 가진 전담요원들은 똑같은 직함을 달고도 지역마다 다른 처우를 받으며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3명 중 2명(67.5%)은 5년 임기로 채용되는 ‘시간선택제임기제 공무원’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가나다라마’ 5단계 중 가장 낮은 ‘마’급이다. 주 35시간으로 책정되고 9급 공무원의 60%를 받는다. 최저임금(월급 기준 201만580원)에 가까운 수준이다. 1년 단위 계약직도 적지 않다. 정식 공무원이 아닌 ‘공무를 하는 민간인’ 신분이라서 권한도 부족하다. 아동과 부모의 분리조치 업무를 다룰 땐 연락이 두절된 친부모를 맨바닥에서 수소문해야 한다.
제도 도입 초창기엔 전국의 전담요원들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보호아동 사례가 생기면 해결 방안을 다 같이 논의했고, 처우 개선 의견도 모았다. 하지만 한 목소리를 내기엔 각각의 고용 형태와 업무환경이 천차만별이었다. 한때 800명이 넘었던 채팅방 참여자는 현재 400명대로 내려앉았다.
전담요원들은 열악한 처우와 제한된 권한 속에서도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주체들을 서로 연결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입양 업무에 이어 보호아동 보조금 집행, 자립준비청년 사후관리까지 맡고 있다.
특히 내년 7월부터 시행될 보호출산제가 이들을 더 긴장시키고 있다. 보호출산과 상담 자체는 전국에 만들어질 상담지원기관이 주도한다. 하지만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는 ‘보호대상 아동’이기 때문에 성본창설과 출생등록, 보호시설 입소, 입양 등을 전담요원이 맡아야 한다.
서울 노원구청 전담요원 설한나 씨는 답답한 마음에 보건복지부 담당 직원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며칠 뒤 받은 답장은 ‘친절한 문장’으로 그를 좌절시켰다. “일에 대한 열정이 느껴집니다만, 업무분장은 각 지자체의 권한이기 때문에 저희가 관여할 수 없습니다.”
전담요원으로 일을 시작하며 설 씨가 기대했던 것은 ‘질적 향상’이었다. 기존에 공공에서 발만 걸쳤던 분야에 전담 인력이 생기면 아이들을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은 ‘도돌이표’였다.
인력 확충 예산을 늘리기 쉽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담요원 운영비는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가 절반씩 분담한다. 한쪽에서 늘리려 해도 다른 쪽이 호응하지 않으면 예산 확대가 어려운 구조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동학대도 아닌 아동보호는 지자체 사업 우선순위에서 상위권에 있진 않다”며 “실적이라고 내세울 게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 정부가 정부예산 긴축 기조를 이어가면서 보건복지·사회복지 예산의 아동·청소년 예산 비중도 2년 연속 감소했다. 아동보호시설 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아동보호 인력의 처우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불안정을 겪은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불안을 얹어주는 것을 뜻한다고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선욱 교수는 말한다.
“업무만 늘리고 인력은 제자리라면 반드시 사각지대가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 피해를 입게 되는 건 결국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가 될 거예요.”
“아동보호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
지역에 모세혈관처럼 배치할 수 있는 아동보호전담요원이 사회복지 전문 역량만 갖춘다면 아동보호체계가 한층 두터워질 수 있다. 하지만 열악한 처우와 제한된 권한은 개선되지 않은 채 아동정책이 우후죽순 쏟아질 때마다 이들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또 끌려가겠군”이라며 자조한다.정책의 초점을 아동 개인에서 가족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담요원은 “아동은 간신히 회복돼도 정작 부모는 잘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 반복돼 우리 모두의 노력이 빛이 바랠 때가 많다”며 “정부 정책이 가족 전체가 아닌 아동 개인의 단기적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지키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결국 사람이 전부다. 아동보호 인력은 장기적으로 일하며 연속성을 가져야 역량이 쌓인다”며 “그래야 아이들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성장 기반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겐 스스로 목소리를 낼 공간도, 투표권도 없기에 이들을 든든하게 지켜줄 존재가 중요하다. 박 씨는 말했다.
“우리가 ‘전담’하는 것은 부모와의 신뢰가 깨진 아이들이 상처만 받고 가라앉는 대신, 세상으로 한 발짝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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