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난민들 목숨 걸고 지켜준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 이야기 ◇비바레리뇽 고원: 선함의 뿌리를 찾아서/매기 팩슨 지음·김하현 옮김/528쪽·2만5000원·생각의힘
나이가 들면서 인간 혐오증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처음에는 ‘네가 어떻게 내게…’,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로 시작된다. 점점 심해지다 보면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지’라는 데까지 생각이 이른다. 바람직한 생각은 분명 아니지만 딱 잘라 잘못됐다고 하기도 어려운 게, 살면서 도움을 받을 때와 그 후가 달라지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와 내 가족, 친구들의 목숨을 걸고 남을 도우라고?
자기 이득을 위해서라면 욕먹는 것 정도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남을 짓밟고 법을 어기는 것조차 무감각한 사람들이 판을 치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자기 이득이나 악의 유혹, 이기주의를 이겨내고 선함의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이 있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의 만행을 피해 프랑스 중남부에 있는 작은 고원 비바레리뇽으로 숨어들어 온 낯선 이들을 도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남을 돕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을 죽여도 정당화되는 당시 현실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목숨을 걸고 타인을 지키려 했을까.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비바레리뇽 주민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점령이라는 불운을 맞닥뜨린 낯선 사람들을, 수백에서 수천 명까지 수용했다. … 이들은 늘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었다. 실제로 일부 마을 주민들은 독일 점령군과 이들에게 부역한 프랑스 경찰에게 처벌받았다. 일부는 목숨을 잃었다.”(1장 ‘대답 없는’에서)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