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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이렇게 관리하면 계속 저출산” 금통위원의 쓴소리

입력 | 2023-12-24 07:38:00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개최된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뉴스1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현 수준에서 오르지 않도록 관리하는 정도로는 유례없는 저출산과 결혼기피 현상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내부에서 정부와 한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에 일침을 놓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정부와 한은은 가계부채 문제의 해소를 위해 부채 절대 규모를 감축하는 것보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의 하향 안정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수준의 가계부채 관리는 사실상 저출산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팔짱 끼고 보는 격이라는 지적이 나온 셈이다.

◇“집값 조정해 실물자산 비중 축소 등 적극적 정책 필요”

(자료사진) 뉴스1


24일 한은 금통위 제22차 정기회의 의사록(11월30일 개최)을 보면 한 금통위원은 우리나라 가계의 높은 실물자산 보유 비중(지난해 기준 약 63%)을 가리켜 “미국, 일본, 영국의 30~50%보다 높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금융자산을 늘림으로써 실물자산 보유 비중을 주요국 수준으로 낮추려면 가계의 차입 수준이 더 높아져 채무 과잉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실물자산 보유 비중이 높을수록 청년층·무주택자는 주택구입을 위해 소비를 줄이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위원은 “부동산 가격의 조정을 통해 실물자산 비중이 선진국과 유사한 수준으로 감소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가계의 금융자산을 늘려 실물자산 비중을 축소하는 것보다 실물자산 자체의 조정을 고려해 보자는 취지로 읽힌다.

또한 이 위원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현재 수준에서 더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정도로는 실물자산 비중 정상화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이 경우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 유례없는 저출산과 결혼기피 현상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런 점을 고려하면 주택시장 정상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통계청의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3월 기준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자산은 실물자산이 76.1%, 금융자산이 23.9%를 차지했다. 실물자산 중에서도 부동산이 93.9%로 압도적 비중을 보였다.

금융투자협회의 2022년 주요국 가계 금융자산 비교를 봐도 한국 가계의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 보유 비중(64.4%)은 금융자산 보유 비중(35.6%)보다 1.8배 높았다. 주요국인 미국(28.5%), 일본(37.0%), 영국(46.2%), 호주(61.2%)를 모두 제쳤다. 특히 코로나19 시절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주요국 부동산 가격이 올라 각국의 비금융자산 비중이 상승했음에도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이에 협회는 “장기 관점에서 가계의 안정적 자산 배분을 위해 비금융자산 비중을 낮추고 금융투자상품, 퇴직연금 등 금융자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정부·한은 왜 ‘비율 관리’ 주장하나…“절대액 줄면 더 문제”

(금융위 제공)


이런 가운데 정부와 한은의 가계부채 관리는 GDP 대비 비율의 하향 안정화에 집중하고 있다. 가계부채 총량 감축의 경우 오히려 부정적인 입장이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30일 금통위 직후 간담회에서 ‘가계부채 문제의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기자 질문에 거꾸로 “가계부채 절대액을 줄이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반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지금 가계부채 절대액이 늘지 않게 하는 정책을 하면 여러 문제가 생길 것”이라면서 “이 문제는 장기적으로 GDP 대비 비율을 줄여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한국의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 3분기 100.2%로 전분기(101.7%) 대비 1.5%포인트(p) 내렸다. 반면 금융위원회의 업권별 가계대출 추이에 따르면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올 들어 11월까지 10조원(1~9월 +1.2조원) 늘었다.

가계부채 총액은 늘되 경제 규모 대비 비율 상으로는 줄어들어, 정부 계획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

정부·한은이 총량 감소 대신 GDP 대비 비율의 안정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대체로 금융 불안과 성장률 하락 가능성 때문이다.

이 총재는 앞선 간담회에서 “(가계부채 절대액이 줄면) 성장률이 더 낮아지고 오히려 금융 불안을 일으켜 부채가 더 늘고 금융시장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지난 10월 국회에서는 “금리를 더 올리면 물론 가계대출을 잡을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금융시장의 안정 문제는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정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발 금융 불안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계부채 문제를 틀어막고자 보다 긴축적인 정책을 쓰는 경우 PF 발 불안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옮겨붙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신의 지난 임기를 되돌아보면서 우리 경제가 가장 위기였다고 생각한 시기로 다름 아닌 작년 10월의 ‘레고랜드 사태’를 짚었다. 그는 당시 “초긴장 상태였다”며 “정부는 ‘위기로 가지는 않는다’고 하면서도 만에 하나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해지고 심리 불안이 실제 불안으로 현실화하면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여겼다”고 회상했다. 당시 강원도의 채무불이행 선언으로 시작된 레고랜드 사태는 국내 자금시장을 냉각시키고 PF 금리를 치솟게 해 금융 불안 위기감을 키웠다.

그런데 금통위원의 이번 지적은 당국의 현 가계부채 관리 기조가 이 같은 경계심에 치중하는 바람에 저출산·결혼기피 등 우리 사회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는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특히 저출산 문제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미래 한국은 저성장을 넘어 역성장 터널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제기되는 실정이다.

물론 가계부채 비율의 하향 안정화 기조는 이번 금통위원 지적과 무관하게 계속될 예정이다. 자칫 금융 불안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치를 수 있는 가계부채 경착륙은 지금처럼 힘든 경제 상황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2기 경제팀을 이끌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가계부채 관리와 부동산 PF 연착륙을 정책 최우선 순위로 꼽으면서 “가계부채 연간 증가율을 경상 성장률 이내로 관리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하향 안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창용 총재도 지난 20일 간담회에서 “부동산 가격이 어떤 식으로 변하더라도 질서 있게 PF를 조정해 나가면서 연착륙을 하는 게 중요한 정책 목표”라고 언급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