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표직 놓는 순간 천 길 나락 떨어질까 불안 개딸 방어벽 치고 尹 실패 반사이익 기대하지만 與 변화로 이젠 ‘이재명-한동훈’ 대결 구도로 재편 保身 급급한 리더십으로 野 총선 이끌 수 있겠나
정용관 논설실장
지팡이를 짚고 ‘강서 압승’의 축배를 들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어깨가 축 처진 느낌이다. 통상 6개월 이상 이어진다는 단식 후유증 탓만은 아닌 것 같다. TV 영상을 통해 비치는 표정을 보면 우선 지쳐 보인다. 주 2, 3회 법정에 직접 출석하는 본인 재판은 물론이고 측근들의 재판 진행 상황까지 챙겨야 하니 정신적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사법 리스크 대응에 소진되고 있을 것이다.
혁신과 통합을 요구하는 당내 비주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대응 방법도 마땅치 않다. 이낙연 전 총리는 “DJ도 2선 후퇴 여러 번 했다. 사법 문제가 없어도 그랬다”고 했다. DJ는 사법 리스크가 없었기 때문에 2선 후퇴가 가능했던 것이고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 때문에 2선 후퇴가 어려운 것 아닐까. 이 대표 스스로도 “혐의가 모두 인정되면 50년 형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가 무리하단 항변이지만, 방탄 철갑이 뚫리면 천 길 나락이 현실화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느껴진다.
그러니 수비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개딸들로 방어벽을 치고 공천권으로 단일대오를 유지하며 잔뜩 웅크린 자세다. 비례대표 방식을 놓고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란 말에도 지금 사느냐 죽느냐 하는 판에 원칙과 명분 내세울 때냐는 심리가 깔려 있다. 여권의 헛발질, 명품 백 같은 영부인 리스크 등 상대방의 자책골이 이어지면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동훈 등판이란 변수가 발생했다. 야권 안팎에선 정청래류의 ‘한나땡’(한동훈 나오면 땡큐) 주장도 있지만,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의 엄습을 경계하는 기류도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긴 이르지만, 분명한 건 내년 총선이 ‘윤석열 대 이재명’의 구도가 아닌 ‘한동훈 대 이재명’의 구도로 재편되는 양상이란 점이다. 내년 대통령 초청 신년인사회 때 언론의 투샷도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아니라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과 이 대표에게 집중될 것이다.
정치 경험이 없는 X세대, 술을 안 마시는 초엘리트 검사 출신, 검은 안경테에 옷 잘 입는 패셔니스타. 그에 비해 여러모로 대척점에 있는 아홉 살 위의 이 대표. 영상으로 보여지는 둘의 이미지, 호감도를 비교 평가하려는 건 아니다. 한 전 장관은 난전도 마다 않는 ‘공격형’의 면모를 보일 것이고, 이 대표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이지만 그 또한 그들의 게임이다.
다만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이 대표가 지난 1년 이상 민주당을 자신의 서바이벌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는 사실이다. 제1야당은 공화제의 바탕이 되는 국가 시스템의 중요한 축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권도 문제지만 공당(公黨)의 역할을 혼동하고 존재 가치를 훼손한 이 대표의 책임도 크다. 이러니 민주당 지지율은 한국갤럽 기준으로 1년 넘게 38%를 넘지 못하고, 정권견제론이 정권안정론보다 훨씬 높지만 민주당을 찍을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 달 전 칼럼에서 여권을 향해 “대선, 지방선거에 이어 내년 총선까지 또 ‘윤석열 대 이재명의 싸움’으로 가야 하나…. ‘윤석열 당’이 아닌 미래 대권 주자들이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각축을 벌이는 ‘오픈 정당’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대통령은 뒤로 한발 물러서란 얘기였는데 한동훈 ‘원톱’으로 귀결됐다. 선택도 결과도 현 여권의 몫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