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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닥다리’ 전투기만 보유한 북한, 첨단 조기경보기 확보 정황

입력 | 2023-12-25 08:09:00

중·러, 美 항모 전단 ‘대리 핵공격’ 첨병으로 北 활용 전략




북한은 12월 17일과 18일 연달아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17일 야간에 쏜 단거리탄도미사일은 같은 날 낮 부산항에 입항한 미 핵잠수함 ‘미시간’에 대한 공격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방향만 동해로 튼 도발이었다. 북한은 올해 한반도 주변에 미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 강습상륙함 등 전략자산이 전개될 때마다 유사한 도발을 해왔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11월 22일 제주해군기지에 미 핵잠수함 ‘산타페’가 입항했을 때나, 3월 27일 미 항모 ‘니미츠’가 부산에 접근했을 때, 3월 19~21일 제주 남동 해역에 미 강습상륙함 ‘마킨 아일랜드’가 왔을 때다. 당시 북한은 미국 전략자산까지 거리와 같은 거리에 있는 동해상 가상 표적에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핵 무인수중공격정을 발사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의 연이은 ‘핵 역량 검증’


12월 18일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발사했다. [뉴시스]

그럴 때마다 북한은 ‘핵 반격’ ‘핵 역량 검증’ 훈련이라고 도발 성격을 규정했다. 미국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접근해 자기네를 위협하면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순항미사일·장거리 어뢰로 파괴하겠다는 위협도 이어갔다. 그야말로 핵무기를 이용한 ‘북한판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이다. 북한의 핵 A2/AD 위협은 3월까지만 해도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였지만, 지난 10개월 동안 북한은 필요한 전략자산을 하나 둘 확보해나갔다. 장거리 해상초계가 가능한 북한판 글로벌호크인 ‘새별-4형’이나 해상도는 형편없어도 길이 300m 이상인 미 항모를 찾는 데는 아무런 지장 없는 정찰위성 ‘만리경-1호’는 다양한 대함(對艦) 핵 타격 수단의 ‘눈’ 역할을 위한 것이다. 새별-4형이 동해나 남해 먼 공해까지 가서 미 함대 위치를 찾으려면 위성 원격 제어 기술과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렇다 할 통신위성이 없는 북한이 장거리 정찰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블러핑(bluffing)이 아닌 이상 중국·러시아의 도움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사실이라면 중국·러시아가 북한의 핵 A2/AD 전략 수행을 위한 전력 구축을 돕고 있다는 뜻인데, 그 저의는 뭘까. 두 나라로선 북한의 핵 A2/AD 무장을 돕는 게 자기네 전략적 이익에 더할 나위 없이 좋기 때문이다. 미국의 초대형 항모는 중국·러시아에 가장 위협적인 전략자산이다. 미 해군이 SM-3·6 같은 고성능 요격자산을 전력화한 상황에서 항모를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핵무기뿐이다. 그러나 중국이나 러시아가 유사시 미국에 직접 핵공격을 감행할 경우 핵 보복 대상이 될 게 뻔하다. 하지만 북한이 나서 핵무기를 쓴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북한이 미 항모를 핵공격하면 항모 전단은 수장되겠지만, 북한 역시 초토화된다.

이 대목에서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미국을 핵공격했다가는 자기네도 보복당할 텐데 북한 지도부가 그런 결정을 하겠느냐”고 말이다. 북한 정권은 주민 수백만 명의 목숨보다 극소수 지도층의 안위를 중시하는 비정상적 집단이다. 이런 집단에 핵무기를 이용한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은 먹히지 않는다. 유사시 북한 지도부는 미 항모 전단과 주한·주일미군 기지에 대량의 핵공격을 퍼부은 뒤 보복당하기 전 중국이나 러시아로 도망가면 그만이다. 미국으로선 북한 지도부가 중국이나 러시아로 도주한 것을 인지해도 이들 국가를 상대로 한 핵전쟁을 감당하긴 어렵다. 북한 지도부는 이후 상황이 잠잠해지면 과거 김일성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군 또는 러시아군을 앞세워 초토화된 북한 땅을 다시 장악하고 두 강대국의 비호 아래 예전 같은 권력을 누릴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중·러 입장에선 미국과 국제사회의 비난이라는 정치 리스크만 감내하면 항모 전단이라는 고가치 전략자산을 날려버릴 수 있는 카드다. 북한을 앞세워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으로, 미국의 팔다리를 자를 수 있는 셈이다.



北 전력 증강 최종 단계, 공군력 현대화


중국 KJ-2000 조기경보기. [뉴시스]

그래서인지 북한은 핵 A2/AD 전략을 구현할 수 있는 중·단거리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장거리 핵어뢰 등 타격자산은 물론, 미 전략자산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정찰위성·장거리 무인정찰기를 순차적으로 확보해가고 있다. 이 같은 전력 증강의 최종 단계는 한미연합군 공군력으로부터 전략자산을 보호하는 현대화된 공군이다. 그리고 북한은 지금 러시아 도움을 받아 공군력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제임스마틴 비확산연구센터는 최근 상업용 위성이 촬영한 평양 순안공항 사진을 공개하며 “북한이 일부 수송기를 조기경보기로 개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려항공 화물기로 쓰이는 러시아제 IL-76 3대 중 1대가 순안공항 정비용 격납고 근처에서 개조 공사를 받고 있는 모습이 위성에 포착된 것이다. 사진 속 항공기는 동체 윗부분에 대형 레이더를 장착할 수 있는 마운트가 설치된 모습이다. 이렇게 IL-76을 개조한 조기경보기는 두 종류다. 바로 러시아 A-50과 중국 KJ-2000이다.

조기경보기는 전투기는 엄두도 내지 못할 크기의 대형 레이더를 얹은 채 수백㎞ 밖 공중 표적을 동시에 탐지·추적한다. 그래서 ‘하늘에 떠 있는 레이더 기지’로 불린다. 조기경보기를 만들어 운용하려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 대형 위상배열레이더와 표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고성능 컴퓨터, 그리고 이런 장비를 한 항공기에 통합할 수 있는 기술 말이다. 북한은 이 정도 수준의 무기체계를 가져본 적도, 기술을 접해본 적도 없다. 결국 9월 정비용 격납고 옆으로 이동해온 수송기가 두 달 만에 레이더 마운트가 식별될 정도의 경과를 보이고 있다면 이는 외부의 기술 지원이 있었다는 의미다. 9월 들어 순안공항에는 러시아 화물기가 여러 차례 드나든 항적 기록이 있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북한은 러시아 기술과 부품을 받아 ‘북한판 A-50’ 또는 ‘북한판 KJ-2000’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조기경보기가 완성돼 실전에 배치될 경우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으로 우려된다.

북한이 제작 중인 조기경보기가 러시아 A-50 초기형 정도 성능만 지녀도 탐지거리는 470㎞에 달한다. 이는 황해도 상공에서 한국 전력을 감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러시아가 비교적 신형인 A-50U 관련 기술을 제공해 신형 ‘쉬멜-2’ 능동전자주사식위상배열(AESA) 레이더가 적용됐다면 탐지거리는 650㎞까지 늘어난다. 북한이 조기경보기를 확보할 경우 한미연합군의 대북 타격 자산 가운데 순항미사일 전력은 가치가 크게 줄어든다. 미군의 토마호크나 한국군의 천무-Ⅲ 계열 순항미사일은 지면에 바짝 붙은 채 저공비행해 북한 지상 배치 레이더의 감시 사각지대로 침투한다. 이런 미사일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조기경보기가 있으면 위치가 아주 쉽게 탄로 난다. 순항미사일은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일단 위치가 드러나면 전투기나 지상 대공포, 지대공미사일의 손쉬운 사냥감이 될 수밖에 없다.



조기경보기-대형 전투기 조합 우려


미국 해군 군함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북한이 조기경보기를 보유할 경우 한미연합군의 순항미사일이 무력화될 우려가 있다. [뉴시스]

최악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조기경보기와 연동해 운용할 대형 전투기까지 확보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 북한은 평양 외곽 순천공군기지를 대대적으로 현대화했다. 활주로 길이를 300m 늘려 2800m로 만들고, 지하 격납고와 계류장, 훨씬 넓어진 유도로까지 갖췄다. 하나같이 대형 전투기 운용을 위한 준비다. 북한 공군에서 가장 큰 전투기는 최대이륙중량이 기껏해야 21t 정도인 MIG-29다. 이 기종은 최대이륙중량 상태에서 700m 정도 활주로만 있어도 이륙이 가능하다. 활주로 길이를 늘렸다는 것은 대형 항공기를 운용하겠다는 뜻이고, 2800m급 활주로라면 이륙중량 30~40t의 대형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러시아 방문 당시 둘러본 Su-35나 Su-30SM, 최근 카자흐스탄이 20여 대를 헐값에 내놓은 중고 MIG-31 등이 이 정도 중량대의 전투기다. 이들 가운데 Su-35, Su-30SM은 조기경보기와 연동해 초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의 중고 MIG-31도 최근 러시아 공군 사례처럼 약간 개량만 하면 사거리 400㎞ 공대공미사일 운용이 가능하다.

북한과 옛 소련 국가들은 여러 차례 무기를 거래했다. 1996~1998년 북한은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중고 전투기를 사들였다. 2009년에는 북한을 출발해 우크라이나로 가던 길에 미 공군에 나포된 IL-76 화물기에서 러시아제 초장거리 공대공미사일 KS-172가 나오기도 했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옛 우방과 무기를 밀거래하며 초장거리 공대공미사일에도 큰 관심을 드러냈다. 신냉전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에 대규모 탄약과 무기를 공급하고 그 대가를 기대하는 북한으로선 지금이 전략자산을 얻을 최적기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국·러시아는 ‘합동전략순찰’이라는 명목으로 전투기와 조기경보기, 폭격기 등을 동원해 한반도를 동해-남해-서해로 감싸는 코스로 무력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12월 14일 도발은 전략폭격기는 물론, 전자전기와 장거리 해상초계기까지 동원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중국·러시아 전략폭격기의 주요 임무는 공대함미사일 투발이다. 게다가 이번 도발에는 적 해군 함대를 상대하는 해상초계기와 전자전기까지 동원됐다. 이는 중국·러시아 양국도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저지하는 공동 A2/AD 전략을 수립하고 다듬어 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도 각종 핵무기와 투발자산, 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기경보기와 전투기를 확보하고 나섰다. 한반도 주변에 북·중·러 연합 A2/AD 저지선이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무장 강화 지원 중·러

최근 러시아와 중국은 전략폭격기로 한반도를 에워싸듯 비행하는 훈련을 감행하고 있다. 사진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러시아 장거리 전략폭격기 Tu-95. [뉴시스]

이처럼 신냉전 체제가 뚜렷해지면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핵무장을 용인하고 이를 더욱 강화하고자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외교당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한반도 비핵화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이행에 대한 입장도 기존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제 정세 판이 바뀌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 정책 결정권자들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발생한 안보 이슈를 제각기 봐선 안 된다. 그 이슈들이 어떻게 서로 톱니바퀴처럼 엮여 정세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통찰해야 한다. 부디 대한민국 안보당국자들이 ‘구닥다리 전투기’만 잔뜩 가진 북한 공군이 왜 조기경보기를 만들고 있는지 좀 더 넓은 시각에서 고민해보길 바란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20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