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시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적용돼 다른 나라에 비해 저평가받는다. [GETTYIMAGES]
한국 주식시장은 다른 나라 주식에 비해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가 적용된다. 같은 매출, 같은 이익을 내는 두 회사가 있을 때 한국 회사 주가가 외국 회사 주가보다 싸다. 동일한 산업에서 매출·이익이 같으면 주가도 같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 회사 주식은 싸다. 이런 현상을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한다.
한국 코스피200 PER, 미국 절반 수준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대표적인 주식투자 지표를 비교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좀 더 확실히 드러난다. 2022년 결산 자료에서 한국 코스피200의 PER은 11.3이다. 미국의 PER은 20.4로 한국의 2배 가까이 된다. 삼성전자가 한국 회사가 아니라 미국 회사였다면 주가가 2배가량 더 비싸다는 뜻이다. 일본의 PER은 16.3이고 PER이 낮은 편인 프랑스도 13.8 수준이다. 선진국의 PER 평균값은 17.9로, 한국의 PER 11.3은 굉장히 낮은 수치다. 심지어 중국의 PER이 13.7이고, 대만도 12.6이다. 선진국이 아닌 신흥국의 PER 평균이 12.5 수준이니, 한국은 신흥국보다도 주가가 낮은 셈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은 최근 일어난 게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있어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한국 주식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논의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이 문제가 제기되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계속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국격 문제다. 또한 한국 주식투자자들이 제대로 이익을 얻지 못하고 손실을 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한국 주식시장의 주가가 제값을 받으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돼야 한다. 그래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한국 주식이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해서 이어져왔다.
보통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첫 번째 원인으로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이 언급된다.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인 만큼 한국 기업은 외국 기업보다 위험도가 높다. 북한 위협 탓에 투자자가 한국 주식을 잘 사지 않다 보니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정한 원인은 아니다. 지금 세계에서 전쟁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여겨지는 곳은 한국보다 대만이다. 전쟁 위험이 디스카운트의 진정한 원인이라면 대만이 한국보다 주가가 낮아야 한다. 하지만 대만의 PBR은 2.2 수준이다. 한국의 0.9보다 2배 이상 높다.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것이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경제정의를 주장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배구조가 중요하지만, 주가 상승을 바라는 주식투자자 입장에서는 지배구조가 별 상관이 없다. 지배구조가 어떻든 회사 이익이 증가하고 주가가 오르기만 하면 된다. 지배구조를 분석해가며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공기업, 정부 시책이 더 중요
그렇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나는 오랫동안 주식투자를 해왔다. 그런데 3년 전 한국 주식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주식투자를 안 하는 것은 아니라서 미국 주식시장으로 이동했다. 이전에는 한국 주식 비중이 컸는데, 한국 주식 비중을 점점 줄이다가 결국 완전히 손을 뗀 것이다. 내가 한국 주식을 하지 않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즉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잘 사지 않는 이유가 나올 것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축구팀에 베팅한다고 치자. 베팅하려면 기본 전제가 필요하다.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열심히 뛸 것이라는 전제다. 선수들이 이기려고 열심히 뛸 때 베팅에 의미가 있지, 선수들이 승리보다 다른 것에 더 신경 쓴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메시, 호날두가 같은 팀에서 뛰어도 의미 없다. 선수들이 승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선수 간 우정에 더 신경 쓰거나 환경보호에 더 신경 쓴다면 그런 팀에 돈을 걸 수가 없다. 지든, 이기든 일단 선수들이 팀 승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리라는 전제가 있을 때만 베팅을 할 수 있다.
한국 주식시장의 문제는 이런 기본 전제가 통하지 않는 회사가 많다는 점이다. 이익이 아니라, 다른 것이 목적인 회사가 너무 많다. 한국전력공사, 강원랜드 같은 공기업은 매출 증대, 이익 증대보다 정부 지침 따르기를 더 중요시한다.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정부 지침을 따른다. 강원랜드는 아예 매출 총량제에 묶여 매출 증대를 위한 노력 자체를 할 수 없다. 공기업은 공기업답게 단순히 이익 증대보다 공익에 더 힘쓰는 게 맞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이익 증대가 아니라 공익 추구가 목적이라면 주식시장에 상장돼서는 안 된다. 주식을 일반 국민에게 팔지 않고, 상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익을 추구한다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일반인에게 주식을 팔고 상장된 후 회사 이익을 희생하면서 공익을 추구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축구 리그에 들어오고 난 후 우리는 승리가 아니라 공공복리를 추구하는 팀이라고 선언하는 셈이다. 그런 팀은 축구 리그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일반 기업도 마찬가지다. 상속 문제가 걸린 기업은 이익이 많이 나고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가 급증한다. 그래서 이익을 낮추려 하고 주가가 오르지 않게 관리한다. 2세, 3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려는 기업은 인수합병 등을 통해 후계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 한다. 회사 이익을 키우고 주가를 높이는 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익 추구보다 계열사가 우선인 그룹들
재벌그룹에 속한 기업이 경영난에 빠지면 같은 그룹에 속한 다른 기업들이 도움을 준다. 자기 회사의 이익보다 전체 그룹의 안녕을 도모한다. 자신의 이익을 희생해 다른 기업을 돕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이야기다. 하지만 상장회사가 그래서는 안 된다. 축구 리그에 없는 팀이 다른 팀을 돕는다면 아름다운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축구 리그에서 뛰는 팀이 친구 팀의 성적을 위해 일부러 상대 팀에 져주거나 한다면 그건 팬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 팀은 축구 리그에 있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그런 팀이 끼어 있는 축구 리그는 보지 않는다.
한국 상장회사들은 참 훌륭하다. 자기 회사의 이익보다 공익을 생각하는 회사가 많고, 경쟁 회사와 공존을 추구하며, 이익을 서로 나누는 좋은 회사가 많다. 정부도 나서서 기업이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을 막고, 이익이 사회 전반에 골고루 돌아가도록 지도한다. 좋다는 건 알겠는데,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시장의 주식을 매수하기가 꺼려진다. 이런 회사들에 큰돈을 맡길 수 없다. 실력은 좀 없더라도, 역량이 좀 부족하더라도 이익 증대를 위해 노력하는 회사나 시장에 돈을 맡겨야 한다. 내가 한국 주식시장에서 멀어지게 된 이유이고, 또 이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일 것이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20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