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딸’ 명칭 파기 논란 원래 ‘응답하라 1997’에 나온 말… 대선 뒤 이재명 지지층에 “개딸” 李비판 세력에 문자폭탄… 비명계 “강성 팬덤과 결별해야” 李팬카페 운영자 “명칭 파기”… 민주당 내 “더 강성화할까 걱정”
지난해 6월 6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근처에 이재명 대표의 지지자들이 이 대표의 ‘6·1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화환들이 줄줄이 놓여 있다. 왼쪽 화환 리본에는 ‘대구 개딸’이라고 적혀 있다. 뉴스1
김은지 정치부 기자
《“‘개딸’이라는 명칭을 공식 파기한다. 앞으로 개딸이란 명칭 대신 ‘민주당원’ 또는 ‘민주당 지지자’로 명명해 주길 바란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이달 9일 올라온 청원글을 시작으로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두 쪽이 났다. 지난해 3·9대선에서 낙선한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기 위해 개딸(개혁의 딸)이란 이름으로 등장한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이 스스로 명칭을 파기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자신을 개딸 용어 창시자라고 밝힌 청원글 게시자는 “상대 진영이 전두광(영화 ‘서울의 봄’ 등장인물)의 음모처럼 우리(개딸)를 프레임해 선동했다”며 개딸이란 이름을 내려놓는 이유를 설명했다. 청원에는 25일 기준 3400여 명이 동의했다.》
당내에선 강성 지지층이 개딸 명칭을 파기하기로 한 것에 대해 같은 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폭력적 언행이 거듭 논란이 되자 이 대표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자발적 해산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지지층 내에서도 “누구 마음대로 개딸 용어를 폐기하느냐”란 반발이 이어지는 등 강성 지지층도 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李 “개딸 등 깊이 사랑한다” 적극 호응
개딸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비롯된 단어로, 성격이 드세고 천방지축인 딸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이 개딸로 불리기 시작한 건 지난해 대선 패배 후 2030 여성 지지층이 주축이 돼 이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마을’을 꾸리면서다. 이들은 ‘딸을 낳고 싶었다’는 내용이 담긴 이 대표의 과거 블로그 글을 공유하며 이 대표를 ‘재명 아빠’, 자신들을 ‘개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누리꾼이 “개딸은 ‘개혁의 딸’”이라고 명명한 것이 호응을 얻으면서 개딸은 이 대표의 2030 여성 지지자들을 일컫는 말로 굳어졌다.
이 대표도 이 과정에서 적극 호응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4월 재명이네마을 이장직을 수락하면서 “개딸, 냥아(양심의 아들), 개삼촌, 개이모, 개언니, 개형 그리고 개형동지와 당원동지 시민 여러분 깊이 사랑한다”고 썼다. 이 대표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지난해 5월에도 재명이네마을 서포터스와의 미팅에서 개딸에 대해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며 “참 많은 우리 개딸, 양아들, 개이모, 개삼촌, 심지어 개할머니까지 함께해주셔서 정말 큰 힘이 난다”고 말한 바 있다.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도 개딸을 추켜세웠다. 무소속 김남국 의원은 지난해 4월 4일 KBS 라디오에서 개딸에 대해 “정치인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활발하게 소통하는 이 대표에게 반응하는 정치적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 줄곧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개딸’
하지만 개딸은 줄곧 당내 갈등의 한가운데에 섰다. 이들은 지난해 4월 민주당이 밀어붙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명단을 작성해 공유하고, 이들에게 ‘문자폭탄’을 보냈다. 당시 재명이네마을 게시판에는 “폭탄 응징하자” “문자폭탄의 시간이다”라는 글이 잇따랐다. 일부 의원은 문자폭탄을 피하고자 이들의 확인 요구에 “찬성한다”는 인증 릴레이를 벌이기도 했다. 강득구 의원은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만 통이 넘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한편으론 고맙고, 한편으론 부담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하다”며 “제 후원금 통장으로 1004원씩 보내주신 수백 명의 2030 ‘개딸’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썼다.개딸은 그 뒤로도 이 대표를 비판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는 이들을 향해 공격을 이어갔다. 이 대표가 지난해 8·28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당선된 뒤로는 더 과격해졌다. 특히 올해 2월 이 대표에 대한 첫 번째 체포동의안이 찬성 139표, 반대 138표로 가까스로 부결되자 이들은 ‘수박’(민주당 내 비명계를 낮잡아 이르는 말) 색출에 나섰다. 의심되는 의원들에게 문자폭탄을 보내고 의원의 사무실에 항의성 전화를 걸었다. 당시 한 비명계 의원은 “사무실에 전화가 쏟아져 보좌진이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어 전화 받을 사람을 따로 한 명 더 고용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비명계가 “당내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며 이 대표에게 개딸과의 단절을 거듭 촉구해온 배경이다. 이원욱 의원은 올해 5월 열린 민주당 쇄신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를 향해 “재명이네마을 이장을 그만두라”고 요청했다. 이 의원 등을 비롯한 혁신계 ‘원칙과 상식’은 3일에도 “친명계 유튜버와 개딸 등 강성 팬덤과 어떻게 단절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올해 3월 울산에서 열린 민주당 국민보고회에서 한 여성 지지자가 “개딸이라는 표현이 악마화됐다. 혐오 단어로 슬슬 바뀌고 있다”고 말하자 “(표현을) 연구해서 바꿀까 싶다. 너무 많이 오염됐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야권 관계자는 “명칭만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 없는데,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속 터지는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 “개딸 명칭 오염” vs “개딸은 현상”
더불어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9일 올라온 “‘개딸(개혁의 딸)’ 명칭 파기” 요구 청원. 자신을 개딸 용어 창시자라고 밝히 청원 글 게시자는 “상대 진영이 전두광(영화 ‘서울의 봄’ 등장인물)의 음모처럼 우리(개딸)를 프레임해 선동했다”며 “앞으로는 개딸 대신 ‘민주당원’이나 ‘민주당 지지자’로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민주당 국민응답센터 홈페이지 캡처
그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건의 충격으로 인해 일부 강성 지지자분의 과격한 행동들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명칭 파기를 통해 민주당원으로서 더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겠다는 자성의 의미”라고도 했다. 재명이네마을에도 일부 지지자가 “의미는 좋지만 오염됐으니 변경하면 좋겠다” “대동단결해서 개딸 대신 ‘당원’ ‘지지자’로 바꾸자”고 동조했다.
하지만 반박도 만만치 않다. 한 지지자는 재명이네마을에 글을 올려 “20대 여성 당원도 같은 민주 시민”이라며 “개딸은 현상인데 자기가 지은 명칭인 것처럼 자아비대하게 행동하지 말라”고 했다. 이에 지지자 10여 명이 댓글을 달아 “공감한다. 명칭이 바뀐다고 본질이 바뀌느냐”며 동조했다. 또 다른 게시글에서도 “우리가 만든 단어에 저들이 흉보고 조롱한다고 왜 우리가 주눅 들고 그 단어를 없애야 하느냐”란 지적이 나왔다. “명튜브 강퇴를 추천한다”는 게시글도 올라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생각이 치우친 정도가 심해지면서 강성 지지층 안에서도 내분이 생겨나는 것”이라며 “그 안에서도 더욱 강성인 사람들의 목소리만 남게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정치부 기자 eun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