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기대에도 美투자은행 절반 “내년 침체”
韓, 美·中 경기둔화-지정학적 불확실성 대비해야

김현수 뉴욕 특파원
“경제 전망을 다시 써야 한다니….”
13일, 미국 월가 경제 전망 담당자들은 공황에 빠졌다. 이날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시장 예상과 달리 “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했다”며 피벗(정책 전환)을 공식화했다. ‘비둘기(통화정책 완화) 파월’로 돌아선 그의 발언에 써놨던 전망을 다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실제로 이달 초 기자들 대상으로 설명회까지 열었던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FOMC 직후 금리 인하 전망 시점을 내년 6월에서 3월로, 골드만삭스는 내년 12월에서 3월로 당겼다. 월가 금융기관 관계자는 “10월엔 장기 국채금리가 5%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무려 1%포인트 내려갈 정도로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월가에선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첫째, 파월이 피벗 공식화를 선언할 만큼 연준 정책 목표인 2% 물가에 근접한 데이터를 따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 정부 공식 통계는 전월 대비,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만 공개되지만 최근 3개월로 기간을 잡으면 이미 인플레이션 수치는 2%대라는 분석이 나온다.
둘째, 내년 11월 미 대선이다. 내년 7, 8월 야당 공화당과 집권 민주당이 각각 전당대회를 열고 대선 후보를 최종 선정해 본격적인 대선 정국으로 돌입하기 전에 금리를 내리는 게 정치적 논란을 피하는 길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고 “정치적 이벤트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지만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 금리선물 시장 투자자들은 이미 내년 3월 인하 가능성을 93%로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금리가 인하되면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지니 투자가 늘고,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락으로 부동산 시장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이 같은 기대감에 뉴욕 증시에선 초우량 기업 30개 종목을 모은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연일 사상 최대치를 찍는 중이다.
하지만 ‘금리 인하=파티 시작’은 아니다. 연준은 최근 경제 전망에서 완벽한 연착륙을 예상했지만 누적된 긴축 효과로 경기 둔화를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연말 쇼핑의 즐거움을 누린 소비자들의 신용카드는 한도에 가까워졌다. 2030세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때 미뤄진 학자금 대출을 다시 갚아야 한다. ‘비둘기 파월’에 급하게 경제 전망을 고친 미 투자은행 10곳 중 5곳이 내년 미국이 경기 침체를 맞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