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연장근로 정부해석 뒤집어
동아일보 DB
연장근로시간 한도 초과 여부를 따질 때는 하루가 아닌 일주일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그동안 정부가 적용해 온 행정해석을 뒤집는 판결이라 혼란이 예상된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이 이틀 연속 밤샘 근무 등 장시간 근로를 조장할 수 있다며 반발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달 초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근로기준법, 근로자퇴직급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세탁 업체 대표 이모 씨의 혐의 일부를 무죄로 보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항공기 기내 시트 등을 세탁하는 업체를 운영하던 이 씨는 2013∼2016년 한 근로자에게 연장근로 한도를 총 130회 초과해 일하게 하고 퇴직금과 연장근로수당을 제때 지급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 2심은 109차례의 연장근로 한도 위반을 인정해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이 회사의 근로자들은 일주일에 보통 5일 일했지만, 주 3, 4일만 근무하는 때도 있었다. 1심과 항소심은 모두 근로자가 하루에 8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시간을 각각 계산한 뒤 이를 더해 일주일에 12시간을 넘겼는지 따졌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일주일 중 2일 동안 15시간씩, 3일 동안 6시간씩 일했다면 총 근로시간이 48시간으로 52시간을 넘지 않지만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봤다. 일주일 동안 14시간의 연장근로를 시켜 법정 한도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대법 “연장근로, 하루 아닌 주 단위로 계산”… 노동계 “장시간 근무 부추길 가능성” 반발
주52시간내 연속 밤샘근무 가능
반면 대법원은 일주일간 총 근로시간에서 40시간을 초과한 시간만 연장근로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에서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주당 한도만 규정했을 뿐 하루에 대한 기준을 따로 두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통해 원심이 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기간에 대해 연장근로 한도 초과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대법원 관계자는 “그동안 주 1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를 계산하는 방법에 관해 하급심 판결이나 실무에서 여러 방식이 혼재해 있었다”며 “주 40시간을 초과한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방식이 타당하다고 최초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고용노동부가 적용해 온 행정해석과도 어긋난다. 고용부는 1, 2심에서 판단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을 모두 연장근로로 계산한다. 예를 들어 하루 15시간씩 일주일에 3일 근무한 사람의 경우 총 45시간을 일해 주 52시간을 넘기지 않았지만 법 위반이라고 판단한다. 하루 8시간을 초과한 7시간이 연장근로에 해당해 3일간 총 21시간으로 연장근로 한도인 주 12시간을 넘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 방식으로는 이런 사례도 합법이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전부터 수십 년간 유지해온 행정해석이 뒤집히자 고용부 내부는 당황하는 분위기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장 노사와 전문가 의견을 들어보고 행정해석 변경을 신중하게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로 인해 주 52시간 내에서 연달아 밤샘 근무가 가능해져 장시간 근로를 부추길 수 있다고 반발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25일 논평을 통해 “1일 8시간을 법정 노동시간으로 정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시대착오적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는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입법 보완에 즉시 나서라”고 촉구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