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한 산부인과에서 불이 나 건물 밖으로 나온 산모와 신생아들이 인근에 있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매장에 대피해 있는 모습. 서울소방본부 제공
새벽 시간대에 서울 서대문구의 한 산부인과에서 불이 나 산모와 신생아들이 한 햄버거 매장으로 황급히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매장은 산모와 신생아 수십 명에게 대피 공간을 제공했고, 이날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었다.
26일 서대문소방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반경 서대문구 홍제동의 지하 3층, 지상 13층 규모의 한 산부인과에서 불이 나 산모 22명, 신생아 14명, 병원 관계자 9명 등 45명이 대피했다. 오전 6시 58분경 신고로 소방이 출동한 뒤 불은 오전 7시 15분경 꺼졌고 인명 피해는 없었다.
병원 인근에 있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매장 직원들은 소방 당국에 화재 신고가 접수되기 전부터 산모와 신생아들이 대피할 공간을 내어줬다. 해당 매장 서유진 부점장(28)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오전 6시 반경 한 산모가 갓난아이를 안고 매장에 들어왔는데 불안해 보여서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라고 물었다”며 “산모가 ‘산부인과에 머물고 있는데 타는 냄새가 나서 일단 우리 매장으로 들어왔다’고 하길래 머물 곳을 마련해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산모들이 한두명 씩 매장으로 들어서는 걸 본 다른 산모들도 잇따라 매장으로 향했다. 이어 소방관이 이 매장에 찾아와 “사람들을 이곳으로 모두 대피시켜도 되겠느냐”며 협조를 구했다. 서 부점장은 “인근에 마땅히 대피할 만한 공간이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흔쾌히 동의했다”며 “직원 4명과 함께 산모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3시간가량 매장 공간을 대피 장소로 제공했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따뜻한 물을 준비해 제공했다. 이날 매장을 이용한 일반 손님들도 이같은 풍경에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다가 화재로 인한 대피 상황이라는 걸 전해 들었다고 한다.
26일 오전 불이 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한 산부인과 인근의 햄버거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산모들과 병원 관계자들이 대피차 들어가는 모습. 서울소방본부 제공
당시 상황을 지휘했던 허남희 서대문소방서 소방경은 “시민 대피에 쓰이는 ‘회복 차량’이 있긴 했지만 공간이 협소해 수용 인원이 한정적이고 신생아들은 안전상 차량에 태우는 게 조심스러워 대피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며 “영업시간 중에도 산모와 신생아들을 위해서 기꺼이 공간을 내어준 매장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 부점장은 “하필 식재료 납품과 간판 청소 때문에 여러 업체가 매장을 방문하는 날이었는데 산모와 신생아를 돌보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업체 측에 양해를 구하고 일정을 조율했다”고 설명했다. 산모들은 갑작스러운 화재 때문에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직원들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여러 차례 건넸다고 한다.
이날 산모들은 서대문구청 측이 마련한 서대문구의 한 공공산후조리원으로 옮겨가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상태다. 소방 당국은 산부인과 건물 지하 1층의 건조기 모터가 과열돼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