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스스로의 선택을 믿어라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아이는 1년 동안 열심히 치료를 한다고 금방 끝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이 엄마에게 시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니 아이가 안정되게 치료받을 수 있는 상황이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라고 조언했다. 능력을 발휘하고 싶고, 직업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처럼 보여야만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는 아니니까.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최선일 가능성이 크다. 선택의 순간, ‘내’ 세포 하나하나가 최선이라고 판단해서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의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인생은 대부분 자신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안에 나도 모르게 그려 놓은 ‘행복의 그림’에 의해서 결정되었을 것이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불현듯 허무감이 들 때는 자신을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선택의 순간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 행복의 그림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끊임없이 생각한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거기에 맞춰 더 상위의 가치에 우선순위를 놓고 서열을 정해야 한다. 뭐든 자신이 최상의 가치로 두는 것에 따라 살면 된다.
어느 쪽이든 결정하고 나서는 ‘나 이래도 될까’라고 지나치게 고민하지 말았으면 한다. 누구도 인생에서 동시에 두 길을 갈 수는 없다. 가치 기준은 아주 이상하고 부적절하지만 않다면 괜찮다. 어느 누구도 당신이 세운 가치 기준에 대해 비난할 자격은 없다. 선택 후에는 뭔가 잘못됐다고 후회하고 죄책감을 갖지 말자. 그것이 그 순간에는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이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선택을 믿어라.
일상의 사소한 선택들이 모두 인생의 방향에 조금씩 영향을 주지만 결정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선택들이 있다. 이런 선택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주변의 반대가 있더라도 반드시 내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주변의 상황에 밀려서 서둘러서는 안 된다. 분노와 원망이 커진다.
후회가 들 때는 자신에게 지나치게 철저한 면이 있는지, 용납하지 못하는 면이 있는지도 살펴보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는다. 엄마, 아빠, 아내, 남편, 딸, 아들, 며느리, 사위, 직장인 등…. 누군가에게는 더 많은 역할이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지나치게 완벽해지려고 애쓰지 말았으면 한다. 역할이 몇 가지 안 될 때는 누구나 잘할 수 있다. 역할이 많아지면 그만큼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역할이 많아지면 자아의 조절 기능이 약해지면서 혼란스럽고 불안해질 수 있다. 그럴 때는 자신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 그래야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너그러워질 수 있다.
지나온 삶에는 깨달음도, 상처도, 아쉬움도, 슬픔도, 굴욕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온 것은 ‘내’가 어떤 힘을 행사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온 것은 그냥 되돌아볼 수 있는 자료일 뿐이다. 저마다의 긴 인생 행로에서 그저 일정 기간일 뿐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당신이 지나온 것으로 이제는 덜 아프기를, 당신이 부디 ‘오늘’을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