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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소금’으로 원자로 냉각… 안전성 높아 美-中 등서 개발 경쟁[딥다이브]

입력 | 2023-12-28 03:00:00

다시 주목받는 ‘용융염 원자로’
1954년 美공군서 최초로 기술개발
노심용융-방사능 물질 유출 없어… 가동 중단 없이 무인 연료충전 가능
韓, 2030년 해양용 1호기 건설 목표




안전한 차세대 원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됐다. 중국에 이어 미국도 물 대신 액체소금을 냉각재로 쓰는 용융염 원자로 건설에 나섰다. 한국은 후발주자이지만, 민관 합동 연구개발로 해양용 용융염 원자로 시장을 개척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 미국도 액체소금 원자로 건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이달 중순 원자력 스타트업 카이로스파워의 시험용 원자로 건설을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총 1억 달러를 들여 테네시주에 2026년 완공할 이 원자로는 용융염 원자로(MSR·Molten Salt Reactor)이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차세대 기술로, 냉각재로 물이 아니라 고온으로 녹인 액체소금을 쓴다는 점이 다르다. 마이크 라우퍼 카이로스파워 창업자는 “미국이 수냉식(물로 냉각)이 아닌 원자로 건설을 승인한 건 50년 만에 처음”이라며 “더 깨끗하고 안전하고 저렴한 핵에너지를 제공하는 능력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선 카이로스파워 외에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세운 에너지 기업 테라파워,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출신들이 세운 소콘도 용융염 원자로를 개발 중이다.

민간기업 중심인 미국과 달리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10여 년 전부터 용융염 원자로에 투자해왔다. 2021년 이미 용융염 원자로를 고비사막에 건설한 중국은 안전평가를 거쳐 올해 6월 원자로 시험 가동을 승인했다. 중국과학원 상하이응용물리연구소가 맡아 시험 운영 중이다. 진행 속도로 볼 땐 중국이 세계 최초의 용융염 원자로 상용화에 가장 다가가 있다.

이 밖에 캐나다 테레스트리얼에너지, 영국 몰텍스에너지 등 전 세계적으로 20개 이상의 기업이 용융염 원자로 개발에 뛰어들었다.

● 치명적 사고 위험이 없다
용융염 원자로는 1954년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된 기술이다. 몇 주 동안 급유 없이 날 수 있는 핵 추진 전투기를 만들기 위한 미 공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이후 이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오크리지국립연구소에 있던 시험용 용융염 원자로 가동은 1969년 멈췄다. 원자력 업계는 물로 원자로 열을 식히는 ‘수냉식’이 평정했다.

잊혀진 기술이었던 용융염 원자로가 다시 주목 받는 건 뚜렷한 장점 때문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치명적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원전 사고 중 가장 위험한 건 노심용융(멜트다운·Meltdown).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아 온도가 급격히 치솟으면서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것을 뜻한다. 후쿠시마 제1 원전의 경우 정전으로 냉각수 순환이 멈추자 원자로 안에 있던 냉각수가 증발해 버리면서 노심용융이 발생했다.

물이 아닌 용융염을 냉각재로 쓰면 사고가 나더라도 증발해 버릴 일이 없다. 액체소금의 끓는점이 1500도 정도로 매우 높기 때문이다. 냉각재가 밖으로 유출돼도 큰 문제 없다. 녹는점이 높은 용융염이 고체로 굳어 버려 방사성 물질 누출을 막는다. 이에 대해 퍼 피터슨 버클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용융염은 끓어오르지 않는다”며 “이것이 원자력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로 떠오른 이유”라고 설명한다.

4m에 달하는 긴 연료봉 다발인 ‘핵연료 집합체’를 쓰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대부분 용융염 원자로는 액체 핵연료를 쓴다. 카이로스파워처럼 고체 연료를 쓰는 경우에도 그 크기가 탁구공 정도로 작다. 따라서 원자로를 작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금처럼 18개월에 한 번씩 연료를 교체하기 위해 원전 운전을 멈출 필요가 없다. 온라인으로 연료를 추가하는 식의 무인 운전이 가능하다. 사용후 핵연료도 훨씬 덜 발생한다.

● 선박용 원자로에 집중하는 한국
한국은 용융염 원자로 기술에 있어 후발 주자이다. 올해 4월부터 국가연구개발 사업으로 선정해 정부 지원을 시작했다. 일단 2026년까지 용융염 원자로의 원천기술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인증을 거쳐 2030년 이후 해양용 원자로 1호기를 건설한다는 로드맵이 짜여 있다.

용융염원자로 원천기술 개발사업단을 이끄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이동형 단장은 “우리가 조금 늦긴 했지만 분발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기술 개발 초기 단계인 데다 그동안 연구원 차원에서 용융염 관련 기술을 쌓아 왔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 기업과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 중이라는 게 고무적”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공동 연구에 참여한 기업은 현대건설, 삼성중공업, HD한국조선해양, 센추리. 연구원은 상업용으로 쓸 수 있는 해양플랜트와 선박 추진용 용융염 원자로에 중점을 두고 기술을 개발 중이다.

용융염 원자로에서 가장 큰 난제는 부식이다. 소금의 강한 부식성을 견딜 만한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 단장은 “부식을 막기 위한 해결책이 하나씩 나오고 있는 중”이라며 “가급적 30년 동안 교체할 필요 없는 안전한 원자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