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동일인 기준 첫 구체화 외국인도 국내 기업 실제 지배땐 동일인으로 지정해 규제 적용 예외요건 충족시엔 대상서 제외
앞으로 대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외국인도 내국인처럼 총수로 지정돼 각종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다만 일가 친척이 계열사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는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법인이 대신 총수가 될 수 있다. ‘외국인 총수’ 논란에 불을 지핀 김범석 쿠팡 의장은 총수 지정을 피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년 2월 6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행령 개정은 사실상 기업을 지배하는 총수를 뜻하는 대기업집단 ‘동일인’의 판단 기준을 법에 명시하기 위해 이뤄졌다. 1986년 대기업집단 제도 도입 이후 동일인 기준을 구체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동일인은 대기업집단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으로, 동일인이 지배하는 회사는 같은 그룹으로 묶여 규제를 받는다.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동일인의 정의를 명문화한 조항이 없다. 이로 인해 공정위가 자의적인 기준으로 동일인을 지정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2021년 쿠팡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며 이런 논란은 더 거세졌다. 외국인 총수 지정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계 미국인인 김 의장 대신 쿠팡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국적에 상관없이 동일인을 지정하는 기준을 마련했지만 쿠팡의 김 의장은 총수로 지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김 의장과 친족의 주식 보유 현황과 지분 구조상 예외요건을 충족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쿠팡의 친족 경영 참여 여부, 계열사와의 자금관계 등은 새롭게 파악해야 하는 사실관계다. 쿠팡의 동일인이 누구로 지정될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예외조건을 구체화함으로써 기업들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동일인을 사람에서 법인으로 바꿔줄 것을 요청하거나 중장기적으로 지배구조 등을 바꿔 동일인 변경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현재 예외조건을 충족하는 대기업집단은 많지 않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는 동일인 판단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기준과 절차를 정한 지침도 마련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이 지침은 동일인 판단 기준으로 기업집단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최고직위자, 대내외적으로 기업집단을 대표해 활동하는 자 등 5가지를 규정했다.
동일인(총수)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에 포함될 회사를 정하는 기준. 동일인이 사업을 지배하는 회사들이 기업집단으로 묶여 상호출자 제한 등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동일인이 법인이든 사람이든 각종 공시 의무가 부과되고 상호·순환출자도 금지된다. 다만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금지는 사람이 동일인일 때만 적용된다.
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