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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국민배우 성추문’ 분열… “예술과 별개” “피해자 모욕”

입력 | 2023-12-28 03:00:00

北소녀 희롱 영상에 논란 재점화
문화장관 “최고 수치… 훈장 박탈”
대통령-前영부인 등 배우 두둔에
여성계 “법위에 사람 없어” 반발




“(제라르) 드파르디외를 공격하는 것은 예술을 공격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그의 흔적을 지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5일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개 서한 ‘제라르 드파르디외를 지우지 말라’를 게재했다. 이 서한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이자 가수인 카를라 브루니와 영국 배우 샬럿 램플링, 배우 작가 영화제작자 등 56명이 서명했다. 문화계 인사들이 성폭력 의혹에 휩싸인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74)를 공개 두둔한 것이다. 그러나 여성계와 좌파 진영에서는 이 같은 옹호에 혐오감을 드러내며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배우 잃을 수 없어” vs “법 위에 사람 없다”
드파르디외는 50여 년간 ‘시라노’ ‘라비앙 로즈’를 비롯한 영화 200여 편에 출연했고 칸, 베니스 영화제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해 프랑스에서 ‘국민배우’로 통한다. 그런 그가 2018년 20대 여배우를 성폭행한 혐의로 2020년 말 기소된 데 이어 다른 13개 성범죄 혐의도 받으면서 지탄의 대상이 됐다.

드파르디외는 이달 초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가 2018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여성 통역원과 10대 소녀에게 성희롱 성격이 짙은 발언을 하는 장면이 담긴 1시간 분량 다큐멘터리가 프랑스 공영방송에 방영된 것이다. 리마 압둘 말라크 문화장관은 “프랑스 최고 수치”라고 맹비난하며 그에게 수여한 국가 최고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문화계 일부에서 드파르디외를 두둔하고 나섰다. 르피가로 공개 서한에 참여한 이들은 “최고 배우가 린치를 당하는데 더는 침묵할 수 없다”며 “영화계 거물인 탓에 무죄 추정의 원칙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위대한 배우를 잃는 것은 비극이자 패배”라며 그가 계속 연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계 등은 강하게 반발했다. 아동폭력 대응 단체 르파피용(나비) 설립자 로랑 부아예는 이 서한에 대해 “추잡하다”며 서명자로 이름을 올린 배우 피에르 리샤르를 단체 홍보대사에서 해임하겠다고 밝혔다. 여성재단 대표 안세실 마일페르는 AFP통신에 “법 위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고, 프랑스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이끈 활동가 에마뉘엘 당쿠르는 “경악스럽다”고 밝혔다.

논란의 불똥은 정치권으로도 튀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일 “(드파르디외는) 위대한 배우이자 천재적 예술가이며 프랑스를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레지옹 도뇌르는 도덕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서훈 박탈에 반대했다. 반면 야당과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려는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박했다.

● “예술·표현의 자유 중시하는 佛”
성추문에 휩싸인 드파르디외가 공개적으로 옹호받을 수 있는 배경에 미국에서 촉발된 미투 운동에 대한 반감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 “프랑스 미투 운동이 성폭력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태도를 뒤흔드는 데 도움이 됐지만 동시에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프랑스 내부에서) 미투 운동이 미국 캔슬 컬처(cancel culture·정치적 올바름에 어긋난 언행을 했다고 판단되는 유명인에 대한 지지 철회)를 무분별하게 수입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고 보도했다.

예술인의 행위와 예술을 따로 떼서 보는 프랑스 문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폴란드 영화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미성년 성폭행이 인정돼 미 할리우드에서 사실상 쫓겨났지만 여전히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드파르디외도 2018년 성폭행 의혹이 폭로된 뒤에도 영화 15편에 출연했다가 뒤늦게 촬영장에서 배제됐다.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