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총리 대회를 위한 실무접촉 진행 북 “우리를 걸고서 정치인 체포 등 폭압조치” 항의 남 “사회도 사람처럼 홍역, 감기 치러…정치불안에 편승”
12·12 쿠데타로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만난 남북은 비상계엄조치와 5·18 광주민주화 항쟁 등 남한의 복잡한 정세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통일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1979년 1월~1980년 12월 ‘남북대화 사료집’을 28일 공개했다.
1980년 5월22일 판문점 판문각에서 열린 총리 간 대화를 위한 제8차 실무접촉 회의록에 따르면 북한 측은 신군부가 5월17일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를 열고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결정한 사실을 언급하며 따졌다.
이어 “귀측(남한) 고위당국자는 지난 18일 이른바 특별담화라는 것을 발표하여 대남적화 책동이 격증되었다느니 남침의 결정적 시기를 노린다느니 하고 우리를 걸고 들면서 이번의 폭압 조치는 북으로부터의 위협때문에 취해졌다고 역설했다”며 “대화 상대방인 우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발로서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지금까지 귀측에서 그러한 이른바 남침위협 소동이 수십차례 벌어졌지만 진짜 남침은 단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군대 인민군대가 남조선에 나가서 지금 학생들을 탄압하고 총으로 찌르나?”며 “왜 이에 대해서 답변을 안 하나”라고 따졌다.
북한의 집요한 항의에 우리 측 정종식 국토통일원 정책기획실장은 “사람도 커가면서 홍역도 치르고 감기도 들고 한다. 우리사회도 마찬가지”라며 “우리는 유일 단세포적인 그런 사회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5·18 민주화운동 등을 홍역과 감기에 비유한 것이다.
남한 측은 “최근의 우리 측 내부정세를 매우 그릇되게 판단한 나머지 귀측(북한)이 오판한 우리 측 국내정세에 편승하고 또 이를 이용해서 우리 측의 국론분열과 사회혼란을 선동하려는 목적 하에서 이번의 대화에 호응해 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고 항변했다.
아울러 “오늘 아침에 귀측에서 이 회의의 벽두부터 최근의 우리 내부사정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첫째 매우 실망했을 뿐만 아니라 과연 우리의 현재 이와 같은 실무접촉이 이래서 되겠느냐 하는 점에 있어서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신현확 국무총리가 사임하자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된 박충훈을 두고서도 북한은 “현실적으로 귀측에 총리가 없다”며 자격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총리 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은 1980년 2월6일 이래 10차까지 진행된 이후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남한 실무대표단은 이틀 뒤 성명에서 “우리가 5·17 조치로 작년 10·26사태(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이후의 일시적인 정치불안 및 사회혼란 현상을 극복하게 되자 남북대화를 구실로 우리의 국내사태에 편승하여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저들의 기도가 빗나가게 되었음을 자인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