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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의 가려움증[이상곤의 실록한의학]〈143〉

입력 | 2023-12-28 23:30:00


한겨울 건조한 날씨로 피부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대부분이 아토피나 건성 피부염으로 인한 것이지만 간 질환이나 당뇨 등 기저질환의 합병증인 경우도 많다. 각종 질환을 달고 살았던 조선의 임금들도 가려움증의 고통을 비켜가지 못했다. 숙종은 그 대표적 인물이었다. 숙종 재위 42년 어느 날 임금이 한밤중에 극심한 가려움증을 호소하자 어의들이 침소로 몰려갔다. 어의들은 훈열과 소화불량 증상을 동반한 것으로 봐 숙종의 가려움증이 간염 등 간질환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인동초 줄기와 매미의 허물인 선퇴(蟬退)를 달인 차를 처방해 증상을 겨우 진정시켰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숙종의 가려움증은 간 기능 저하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록에는 그가 젊을 때부터 간 질환을 앓아 왔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재위 2년 9월 어느 날 임금이 두통과 인후통 등 감기 증상을 호소해 치료했지만 보름이 지나면서 눈이 노랗게 변하면서 황달 증상이 나타나 시령탕(柴苓湯)을 처방해 완치시켰다.”

숙종의 아들 경종도 세자 시절 어머니 장희빈이 사사(賜死)되는 것을 지켜본 후 가려움증을 호소해 치료한 기록(숙종 재위 27년)이 있다. 스트레스로 인한 가려움증으로 보인다. “어제 저녁부터 세자(경종)의 등과 배에 홍반이 여러 개 생겨 가려워했다. 양명경(대장과 위에 관계된 경락)의 풍열이 피부에 배여 생긴 것으로 청기산(淸氣散)이라는 처방에 칡과 황금(黃芩)을 넣어 복용시켰다. 처방을 한 지 이틀 후 증상이 좋아졌다.”

효종은 재위 10년 눈의 염증과 두드러기로 인한 가려움증으로 고생했다. 방풍통성산에 우방자(牛蒡子)와 선퇴를 넣은 탕약을 먹고 치료한 기록이 있는데, 그 가려움증의 근본 원인은 당뇨병이었다. 효종이 당뇨병(소갈병)을 심하게 앓았음은 각종 기록에 나온 관련 처방을 보면 알 수 있다. 즉위 원년엔 황금탕, 재위 2년 청심연자음, 재위 3년 양혈청화탕, 재위 7년 맥문동음을 각각 투여했는데, 이들은 모두 동의보감 소갈문에 제시된 당뇨 치료 처방이었다.

가려움증은 아토피, 건성 피부염 등 피부질환에 의해 쉽게 발생하지만 간이나 신장의 기능 장애, 당뇨 등 내분비계의 전신성 질환, 갱년기, 심리적 과민(스트레스) 등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가려움증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대표적 원인 물질은 아미노산의 일종인 히스타민이다. 히스타민은 신경을 통해 통증을 대뇌로 전달하는 기능을 하며 염증과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통증을 느낄 때는 히스타민의 양이 급격히 증가하고 가려울 때는 그 양이 100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 그래서일까. 가려울 때 손톱으로 박박 긁는 행위도 인위적으로 통증을 일으켜 히스타민의 양을 늘림으로써 가려움을 잊기 위한 본능적 방어기제라는 견해도 있다. 중국 한나라 환제 때의 선녀 마고는 손톱이 마치 새 발톱처럼 생겨 사람들의 가려움증을 긁어 없앴다고 한다. 이렇게 신화적 민담까지 만들어진 걸 보면 옛사람들에게 가려움증이 얼마나 가혹한 천형이었는지 알 수 있다.

가려움증에 가장 많이 쓰이는 약물은 우엉의 씨앗인 우방자(牛蒡子)다. 소가 그 뿌리를 잘 먹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성질이 맵고 차다. 매운맛은 피부 속 열을 배출하고 찬 맛은 가려운 기운을 진정시킨다. 우엉을 반찬으로 먹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사실 가려움증의 치료제로 실록에 더 많이 언급된 약재는 매미의 허물(껍질)인 선퇴다. 사이토카인의 발현을 억제해 아토피 등 가려움증 치료에 유효하다는 한의학연구원의 연구 결과도 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