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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노출 PF 163兆… ‘금값’ 청담동 땅 사업차질, 주차장으로 써

입력 | 2023-12-29 03:00:00

[태영發 건설업계 위기]
금융위기이후 全금융권 PF 가세
고금리에 수익성 악화 등 부실화
“내년 상반기까지 PF 위기 계속
30조 브리지론 반토막 나 뇌관”




서울 강남구에서도 ‘금싸라기’ 땅으로 꼽히는 청담동 도산대로 인근 부지에는 ‘슈퍼리치’를 위한 고급 주거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포장조차 되지 않은 채 유료주차장으로 사용 중이다. 해당 사업은 자금난으로 올해 2월 토지와 사업권이 공매로 넘어갔지만 7월 시행사가 가까스로 대주단을 설득해 브리지론을 올해 말까지 연장했다. 여전히 착공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브리지론은 내년 4월까지 한 차례 더 연장된 상태다. 28일 만난 현장 관계자는 “공사가 언제 시작될지 결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28일 서초구 ‘영동플라자’ 개발 사업장 부지가 텅 비어 있다. 강남역에서 도보로 8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에 지하 3층~지상 5층 규모의 신축 상가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전환에 실패한 후 부지 공매의 최종 입찰까지 유찰되면서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

강남역에서 도보로 8분 거리에 있는 서울 서초구 ‘영동플라자’ 개발사업 부지도 멈춰선 지 오래다. 지하 3층∼지상 5층 규모의 상가를 신축하는 이 사업은 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전환에 실패한 후 부지 공매의 최종 입찰이 유찰되면서 대주단과의 협의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최종 입찰을 앞두고 매입 의지가 있는 업자들이 몇 차례 찾아와 ‘이번에는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유찰됐다”고 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부동산 시장이 경색되면서 ‘불패 신화’로 꼽혔던 서울 강남 지역의 개발사업까지 난관에 부딪치는 등 금융권과 건설업계가 ‘부동산 PF 리스크’에 노출되고 있다. 특히 만기 연장으로 버텨 온 30조 원 규모의 브리지론이 반 토막 나면서 고스란히 금융사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동산 PF는 시행사가 상가, 물류센터, 아파트, 주상복합 등을 짓기 위해 미래에 예상되는 분양 수입금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담보에 기반한 일반적인 대출과 달리 부동산 PF는 개발 사업의 미래 현금 흐름을 내세워 대출을 받는다. 부동산 PF에 투자하는 금융사들은 담보가 없는 만큼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한다.

국내 은행권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PF 대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저금리 기조와 함께 저축은행과 보험사 등 제2금융권까지 부동산 PF 시장에 가세했고, 부동산 경기가 호황을 맞았던 2017년부터 규모가 급격히 불어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부동산 PF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은 163조4000억 원으로 집값이 급등하기 전인 2017년 말(80조6000억 원)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올랐다.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도 2020년 말 92조5000억 원에서 올해 9월 말 134조3000억 원으로 늘었다.

문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자금 회수에 난항을 겪는 사례가 늘었다는 점이다. 비수도권 지역의 경우 미분양이 이어지면서 시행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됐고 원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서울 강남권의 ‘알짜’ 부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청담동의 옛 프리마호텔 부지에 준공 예정이었던 고급 주택 ‘르피에드 청담’은 선순위 채권자 새마을금고중앙회가 브리지론 만기 연장에 동의하면서 간신히 기한이익상실(EOD·대출 만기 전 자금 회수 요구) 위기를 넘겼다.

특히 주로 2금융권이 사업 초기 단계에 돈을 댄 브리지론이 부실 리스크의 핵심 뇌관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브리지론은 부동산 개발사업 착공 전에 토지 매입 등 초기 단계에 자금을 빌려주는 단기 대출을 말한다. 시행사가 인허가를 받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본 PF를 받아 브리지론을 상환한다.

다올투자증권은 9월 말 기준 본 PF로 넘어가지 못하고 만기 연장으로 버티고 있는 브리지론 규모를 약 30조 원으로 추산했다. 이를 본 PF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60조 원 안팎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용평가 업계에서는 브리지론의 30∼50%가 최종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PF 리스크가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금리 장기화로 내년 상반기(1∼6월)까지는 부동산 PF 위기가 계속될 것”이라며 “금리가 가장 높고 본 PF 전환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브리지론의 부실을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