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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주식 팔고 이사회 퇴진… 경영권 지키려 간접지배 나서

입력 | 2024-01-01 03:00:00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전량 매각
본인 소유 현대네트워크에 넘겨
주력사 이사회 20년만에 물러나
“지배구조 선진화 조치” 명분 쌓고… 쉰들러의 지속적 M&A에 대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그룹 주력 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이사회에서 20년 만에 물러났다. 이와 함께 현대엘리베이터 보유 주식 전량(5.74%)을 현대네트워크에 매각했다. 현대네트워크는 현 회장 지분이 90% 이상인 회사다. 재계에선 현 회장이 ‘이사회 중심 경영에 나선다’라는 명분을 쌓으면서도 현대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31일 현대그룹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12월 29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새로운 이사진을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현 회장이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내려오는 대신 새 이사로 현 회장 측 ‘백기사’로 분류되는 임유철 H&Q파트너스(사모펀드) 대표가 합류했다. H&Q파트너스는 올해 전환사채·교환사채 인수 등의 방식으로 현대네트워크에 약 3100억 원을 투자했다.

현 회장은 임시 주총 직전이던 같은 달 27일 모친 김문희 씨로부터 증여받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224만5540주(5.74%)를 모두 현대네트워크에 장외 매도했다. 현대네트워크는 현 회장이 지분 91.3%를 보유한 현대홀딩스컴퍼니에서 인적 분할된 회사로 사실상 현 회장 소유 회사다. 현대홀딩스컴퍼니는 현재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 주주(19.26%)이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지난해 11월,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현 회장이 선제적으로 이사회 의장직 사임 의사를 밝힌 데 따라 이뤄진 조치”라고 설명했다. 현 회장은 남편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2004년 3월 이사회에 합류해 현대그룹을 이끌었다. 이사회에선 물러났지만, 현 회장은 대외 업무를 중심으로 그룹의 경영 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다국적 승강기 기업 쉰들러홀딩스 등으로부터 지속적인 인수합병에 위협을 느낀 현 회장이 현대그룹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중장기 전략으로 ‘간접 지배’ 방식을 채택한 것이란 풀이도 나온다. 산하 기업(계열사)으로 현대무벡스, 현대아산, 현대경제연구원, 현대투자파트너스 등을 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약 25%가 현 회장 소유의 현대홀딩스컴퍼니와 현대네트워크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간접적인 지배 방법으로 현 회장은 2003년 KCC와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을 당시부터 현대엘리베이터 인수를 노려온 쉰들러(11.51%)와 지분 10%포인트 이상 격차를 유지하게 됐다. 쉰들러는 “현 회장이 2006∼2013년 당시 현대엘리베이터의 주력 계열사였던 현대상선(현 HMM) 경영권 방어를 위해 금융사들과 맺은 파생금융상품 계약으로 현대엘리베이터가 손해를 입었다”며 2014년 주주 대표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KCC와 경영권 분쟁을 치르던 2003년부터 현대엘리베이터 인수에 나섰던 ‘20년 악연’ 쉰들러만 해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현 회장의 퇴진을 요구할 때 ‘소유와 경영의 분리’란 명분을 내세웠다”며 “쉰들러의 주주 대표 소송으로 이자까지 총 2700억 원의 배상금을 물어준 현 회장으로선 추가적인 그룹 경영권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최선의 방어 수단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