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비대위원 노인폄하·막말 논란 한동훈 위원장 인선과 검증도 문제 운동권과의 대결, 편 가르기보단 경제·민생 살리기에 매진해야 성공
천광암 논설주간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하자마자 ‘역풍’을 만났다. 한 위원장이 인선한 임명직 8명의 비대위원 중 2명의 과거 발언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는 것. 순풍보다는 역풍이 많은 게 세상사라곤 하나, ‘배’가 항구 밖을 나서기도 전에 거센 역풍을 만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우선 민경우 비대위원은 지난해 10월 한 토크콘서트에서 “지금 가장 최대의 비극은 노인네들이 너무 오래 산다는 것이다. 빨리빨리 돌아가셔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거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했던 “60,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보다 훨씬 고약하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 출범식에서 “우리 당은 어르신을 공경하는 정당”이라고 했는데, 이 발언이 통째로 무색해지게 됐다.
박은식 비대위원이 과거 자신의 SNS에 올렸다는 “전쟁에서 지면 ‘집단 ㄱㄱ’이 매일같이 벌어지는데 페미니즘이 뭔 의미가 있냐”는 주장도 어이가 없다. 페미니즘에 대한 찬반을 떠나, 집권 여당의 비대위원을 맡기에는 인식이나 표현의 수준이 너무 천박하다.
‘한동훈 비대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수여당 비대위의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2012년 박근혜 비대위’를 철저하게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30% 선마저 무너진 위기 상황에서 총선을 100일가량 앞두고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의 결정적인 성공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과감한 차별화와 중도 확장 전략이다.
박근혜 비대위는 지나치게 ‘시장지상주의적’인 정강·정책을 ‘공정성’과 ‘복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정하고 보수의 ‘터부’로 통하던 빨간색을 당색(黨色)으로 채택하는 등 중도 확장에 총력을 쏟아부었다. 당명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그 결과로 패색이 짙던 19대 총선의 판세를 뒤집고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한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오랜 상하관계로 맺어진 ‘인연의 빚’이 있고, 윤 대통령에게는 아직 3년 5개월이나 임기가 남아 있다. 경쟁관계였던 이명박-박근혜의 차별화를 뛰어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그렇기에 한 위원장은 경제·민생 살리기를 통한 중도 확장에 더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중도 확장을 위한 경제·민생 살리기보다는 지지층 다지기를 위한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에만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에서는 ‘숙주’와 같은 자극적인 용어를 써가면서까지 386 운동권에 대한 거친 전의(戰意)를 드러내 보였다.
한동훈 비대위의 임명직 비대위원 8명 중 경륜과 중량감이 있는 경제·민생 전문가로 꼽을 만한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시급한 경제·민생 현안 해결을 제쳐 두고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을 비대위의 최우선 과제로 앞세우는 데 대해 지지층은 박수를 보낼지 모른다. 그러나 불경기와 고물가 고통에 시달리는 서민층이나 총선 캐스팅보트를 쥔 중도층의 공감을 끌어내기는 어렵다. ‘386 운동권 정치’는 지난 대선에서 이미 한 차례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여전히 그들의 특권정치가 국가의 미래와 민생을 위협하는 문제라면 한 위원장이 앞장서 싸우지 않더라도 현명한 국민이 올해 총선에서 또 한 번 심판할 것이다.
한 위원장은 소설 ‘모비딕’을 자신의 최고 애독서로 꼽는다. 소설은 괴물고래 ‘모비딕’에게 한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의 광기 어린 복수에 관한 이야기다. 개인적인 복수에 모든 것을 건 에이허브 선장은 결국 모비딕의 눈에 작살을 꽂아 넣는다. 그러나 그 대가는 자신뿐 아니라 ‘피쿼드’호의 선원 전원(소설 속 화자만 제외)의 죽음이다.
한 위원장은 자신이 모비딕을 향한 에이허브 선장의 싸움처럼 공허하고 무모하면서 값비싼 대가를 필요로 하는 싸움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아직 뱃머리를 돌릴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