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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파괴에 대하여[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입력 | 2024-01-02 23:3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태어나서 살아가는 길에 당연히 자신을 사랑해야 하지만 반대로 스스로 해치려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려고 하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살아가면서 두 방향의 삶을 본능적으로 지향합니다. 하나는 살려고 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죽으려고 하는 방향입니다. 살려고 하는 것은 건강하게 행복하게 소망하는 바를 성취하면서 사는 길입니다. ‘리비도, 삶의 본능’이라는 에너지를 씁니다. 죽으려고 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병에 걸리게 만들고 불행에 빠지게 하고 성공보다는 실패의 길로 걸어가는 겁니다. ‘타나토스, 죽음의 본능’이라는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흔히 공격성으로 나타나지만 완벽하게 무력한 상태로 돌아가고자 할 때의 극단적인 자기 파괴는 자살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극단적인 방식과 달리 스스로 모를 정도로 교묘하게 자기를 파괴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도하게 습관적으로 음주하거나, 절대 안 되는 것을 알지만 마약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가 그러합니다. 취미 생활에서도 위험이 크게 따르는 것들을 선택한다면 죽음을 향한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암벽 등반이나 자동차 경주나 스카이다이빙을 구태여 즐긴다면 죽음의 본능이 힘을 얻은 결과인지를 따져 봐야 합니다. 자긍심을 높인다는 이유로 자신을 불필요하게 위험한 상황에 되풀이해서 노출시키는 성향이 있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사소하더라도 이런저런 사고를 반복해서 낸다면 자기 파괴적 본능의 발동과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해치는 행위는 도움을 받으려고 병원을 찾는 환자에게서도 자주 관찰됩니다. 처방받은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는 행위부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주저하다가 조기 진단과 치료 시기를 놓쳐서 치유가 힘든 말기 암 판정을 받는 경우까지 다양합니다. 심장 질환과 공격성 사이의 연관관계도 밝혀져 있습니다. 우울증도 공격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밤잠도 설치면서 자신을 비난하는 증세를 지속해서 보인다면 공격성이 밖으로 남을 향하지 않고 안으로 자신을 향해 작동돼서 우울증이 생긴 것으로 봅니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는 해로운 행위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자발적으로 저지르기도 합니다. 말을 잘못하여 생기는 실수를 흔히 범하는데, 정신분석에서는 대개 실수가 아니라 본심이 나온 것으로 봅니다. 그 말을 한 사람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적 동기에서 그런 특정 단어나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와서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석합니다.

공격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비난, 욕설, 위협, 반항으로 나타나고 전쟁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패를 갈라서 시위하거나 항거하면서 다툽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집단에서 공격적인 행위가 일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를 모으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실제는 다릅니다. 개인 각각에서 죽음의 본능이 점화되어 모이면 더욱더 파괴적으로 움직입니다. 삶의 본능과 균형이 무너지면서 ‘집단자살’이라는 불행한 결과로 이어진 일들이 있었음도 사실입니다.

집단적 공격성 분출은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연관이 있습니다. 지도자의 기만과 현혹에 휩싸이면 숨겨져 있는 의도가 보이지 않거나 알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무시합니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려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능란한 이야기에 넘어가서 가슴이 뭉클해진 구성원들이 열정적으로 충성을 서약하면서 그 집단은 스스로 파괴하는 길로 우르르 몰려가게 됩니다.

자기 보존이 인생의 목표여야 함에도 자신의 신체나 정신에 해를 주는 자기 파괴적 행위가 흔히 일어나는 현실은 역설이자 모순입니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스스로 파괴하는 방법을 습득한 현대인에게 약물 남용이나 자해는 이미 일상적인 현상입니다. 이미 마약중독마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손상하는 자해는 아주 흔합니다. 자해는 대부분 고통스러운 감정을 처리하려고 그렇게 합니다. 자살은 타살보다 훨씬 더 흔합니다. 자해 행위가 강박적으로 반복되면 겉으로 보기엔 그 사람의 팔자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죽음의 본능이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으로 태어나서 현명하게 살려면 공격성은 물론이고 죽음의 본능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삶에 지쳐서 태어난 것 자체를 원망하기도 하지만 우연히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연 수명이 다할 때까지 이런저런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입니다. 생식의학의 관점에서는 확실히 그러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착상되고 자라고 세상의 빛을 보았으니 경이로운 일입니다. 태어나지 못했기에 죽을 수도 없는 잠재 생명체들을 생각하면 태어났기에 스스로 죽을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글을 읽고 깨달은 바입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삶의 본능에서는 생생함을, 죽음의 본능에서는 겸손함을 취하면서 참고 기다리며 묵묵히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