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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중 쪼개진 이스라엘… “사법부 무력화 입법무효”

입력 | 2024-01-03 03:00:00

이스라엘 대법원 “민주 국가 훼손”
네타냐후측 “반민주적 결정” 반발
전쟁속 봉합했던 갈등 재점화
민간 살상 등 위기의 네타냐후… 추가 악재 직면 가능성 커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이스라엘 대법원이 1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강경 우파 연정이 지난해 통과시킨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무효화했다. 사법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이 법안은 제출 당시부터 현직 총리 최초로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 본인을 구하기 위한 ‘방탄용’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이에 따른 국민적 반발은 물론이고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의 우려도 상당했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잠시 봉합되는 듯했던 이스라엘의 내부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번 판결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와 전쟁 장기화 등으로 이미 적지 않은 지도력 위기에 처한 네타냐후 총리에게 추가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네타냐후 총리가 속한 집권 리쿠드당은 “전시 상황에서 통합을 바라는 국민들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 대법관 15명 중 8명 “민주국가 훼손”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날 대법관 15인이 전원 참여한 가운데 찬성 8, 반대 7로 지난해 7월 의회가 가결한 ‘사법부에 관한 개정 기본법’을 무효로 결정했다. 대법원은 성명을 통해 “이 법이 민주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의 기본 성격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특히 행정부의 비합리적인 장관 임명을 심사하는 사법부의 권한을 없애는 부분을 문제 삼았다. 행정부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사법부의 견제 장치를 없앴을 뿐 아니라 총리가 자격 없는 측근을 요직에 임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이유로 논란이 많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2022년 말 세 번째 집권에 성공했다. 두 번째 임기 중의 부패 혐의로 현재도 재판을 받고 있는 그가 집권 직후부터 사법부 무력화 입법을 추진하자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조차 깼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거셌다. 맹방인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조차 거듭 우려를 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이스라엘 곳곳에서는 대규모 반대 집회가 벌어졌지만 결국 법안은 넉 달 후 의회를 통과했다. 야권의 반발로 같은 해 9월부터 대법원이 이 법안의 적합성을 심사했고 이날 판결이 나온 것이다.

다만 이번 판결을 둘러싼 후폭풍과 국론 분열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7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이 무효화 결정에 반대할 정도로 사법부의 분열 또한 우려할 수준이다. 정치권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렸다. 네타냐후 총리보다 더 극우 성향으로 유명한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반민주적인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반면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 등 야권 지도자는 “대법원이 국민 보호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며 반겼다.



● 설상가상 네타냐후, 전쟁에도 영향


네타냐후 총리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하마스와의 전쟁 상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정권은 하마스의 선제 공격을 사전 인지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1200여 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는 비판을 여전히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탄 입법을 재시도하면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 온 예비군이 반(反)네타냐후 시위를 재개하거나 복무 거부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고 AP통신 등이 진단했다. 예비군들은 지난해 법안에 반발해 복무 거부를 선언했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복귀한 상태다. CNN 또한 “네타냐후 총리가 논란이 되는 변화를 강행할 경우 헌정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고 평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향후 몇 주 안에 수천 명의 병력을 철수할 예정이라고 1일 밝혔다. 그간 계속됐던 대규모 공습과 지상군 위주의 교전 대신 저강도 작전으로 전환해 민간인 희생을 줄이라는 미국의 압박에 따른 것이라고 CNN은 분석했다. 이스라엘 지원 사격을 위해 지중해에 전개됐던 미 해군의 ‘제럴드포드’ 항공모함 함대도 본국으로 귀환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