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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日지진 부상자 몰린 병원, 물끊겨 수술-투석 어려워… 온천선 옷도 못입고 탈출”

입력 | 2024-01-03 03:00:00

[日 규모 7.6 강진]
강진 덮친 노토반도 르포
최소 48명 숨져… 기시다 “구출 최우선”



무너진 600년 역사 상점가 규모 7.6의 강진이 일본 이시카와현을 덮치면서 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나나오(七尾)시 상점가의 일본 유형문화재 ‘다카자와 양초’ 점포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나나오=AP 뉴시스


나나오=이상훈 특파원 

난도질을 당한 듯 찢어진 도로, 힘없이 주저앉은 목조 주택, 골목 가운데 쓰러져 빈 깡통처럼 나뒹구는 돌기둥…. 차가운 바닷바람이 부는 거리에는 담요를 둘둘 두른 노인들이 넋이 나간 듯 말 없이 무너진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10분 넘게 서 있어도 행인 한 명 찾기 힘든 시내 중심가에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는 구급차만 어딘가로 바쁘게 향했다.

2일 오후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 있는 나나오(七尾)시. 새해 첫날부터 규모 7.6의 강진에 휩쓸린 도시는 하루 만에 삶의 온기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인구가 약 5만 명 되는 소도시지만, 공립노토종합병원은 지진 피해를 입은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병원 관계자는 “물이 끊겨 수술이나 투석이 어렵다. 급수차 지원이 절실하다”고 답답해했다. 와쿠라 온천 등 인근 명소를 찾았던 관광객 1400여 명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탈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2일 오후 일본 이시카와현 나나오시의 한 목조 주택이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다. 나나오=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2일 오후 일본 이시카와현 나나오시의 한 목조 주택 외벽이 지진으로 부서져 바닥에 흩어져 있다. 나나오=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가장 큰 지진해일(쓰나미) 경보가 내려졌던 1일 노토반도 지진은 우려했던 해일 피해는 크지 않았다. 허나 목조건물 등이 붕괴되며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많아 이사카와현 집계 기준 2일 오후 8시 현재 현 전체에서 최소 48명이 목숨을 잃었다. 빠른 대처가 쉽지 않은 노년층이 주를 이뤘고, 10대 청소년도 포함됐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이날 오전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비상재해대책본부회의에서 “피해자의 조속한 구출이 최우선”이라며 “피해 지역 도로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뱃길을 통해 구호물자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日 강진에 최소 48명 사망… 6만 이재민, 여진 우려에 거리서 밤새


노토반도 피해현장 르포
교통망 끊긴데다 단전-단수 고통
“구호물자 부족… 모닥불 쬐며 버텨”
잔해에 깔린 아버지 끝내 잃기도… 日국토지리원 “도시 1.3m 이동”


1일 규모 7.6의 강진이 덮친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에서 지진 여파로 발생한 화재가 이튿날인 2일 오전까지 꺼지지 않고 있다. 이 화재로 최소 200동이 넘는 건물이 불에 탔다. 아사히신문 제공

“이곳에서 65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큰 흔들림을 느꼈다.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머리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탁자 밑으로 들어갔다.”

2일 나나오시 중심부 나나오역 뒤편의 주택가에서 만난 쓰카모토 씨(68)는 전날의 끔찍한 지진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골목 곳곳에는 무너져 내린 주택에서 떨어진 기와, 벽돌, 유리창 등 잔해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일본 노토반도 강진 발생 다음 날인 이날 오전 10시경, 피해 지역에 내려졌던 지진해일(쓰나미) 경보와 주의보는 모두 해제됐다. 하지만 아직 명확한 피해자 수도 집계되지 않은 채 살아남은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터전을 잃은 이재민 5만7000여 명은 인근 교통망이 끊긴 데다 정전 및 단수까지 겹쳐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7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인접한 목조 건물을 덮치기도 했다. 이날 오전 무너진 건물 앞에서 한 주민이 엎드려 오열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 잔해에 깔린 父, 구조 늦어 잃기도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에 등장해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나나오시 중심가의 ‘나카야마 약국’은 건물 1층이 폭삭 주저앉았다. 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상점가 잇폰스기(一本杉) 거리에 위치한 일본 유형문화재 ‘다카자와 양초’ 점포도 통째로 무너졌다.

거리에 있는 편의점들은 24시간 영업이 무색하게 곳곳이 문을 닫았다. 일부 문을 연 주유소에는 기름을 넣기 위한 차량 수십 대가 줄을 서 있었다. 나나오시로 들어가는 국도 249호선은 도로 곳곳이 쩍쩍 갈라지고 30cm가량 솟구쳐 올라온 곳도 보였다. 심하게 주저앉은 일부 구간은 아스팔트로 땜질을 하는 긴급 보수가 이뤄졌지만 울퉁불퉁하게 구겨진 상당수 구간은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다. 또 다른 주요 피해 지역인 이시카와현 와지마(輪島)시에서는 뿌리가 뽑힌 듯 옆으로 무너진 7층 건물이 이번 참상을 대변해줬다. 현지 매체 훗코쿠 신문에 따르면 눈앞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낸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다. 와지마시에 있는 친정을 찾은 다케모토 유키에 씨(51)는 가족과 거실에 모여 있다가 지진을 겪었다. 그와 남편, 딸은 가까스로 대피했지만, 아버지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다케모토 씨는 폐허 속에서 아버지를 겨우 찾아냈지만 잔해에 깔려 구조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구조대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아버지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며 통곡했다. 결국 아버지는 이날 오후 인근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2일 오후 일본 이시카와현 나나오시의 한 약국이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다. 나나오=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2일 오후 일본 이시카와현 나나오시의 주택 담장이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다. 나나오=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여진 무서워 노숙하는 이재민들


갈 곳을 잃은 일부 시민은 또 다른 여진에 건물이 무너질까 봐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웠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영하의 기온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버텼다. 한 주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지나가는 차들을 붙잡아 물어보는 중”이라며 답답해했다.

2일 오후 일본 이시카와현 나나오시의 한 다리에서 지진으로 차량 및 사람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나나오=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2일 오후 일본 이시카와현 나나오시의 아스팔트 거리가 지진으로 갈라져 있다. 나나오=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이날 비상재해대책본부회의에서 “‘푸시형 지원’을 통해 이재민을 돕도록 관계 부처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푸시형 지원이란 현장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중앙정부에서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피해 현장에는 자위대 1000명을 비롯해 경찰 634명, 소방 2039명 등이 투입됐다.

일본 국토지리원은 이번 강진 발생 전후 관측 데이터(GPS)를 실시간 분석한 결과 와지마시가 서쪽으로 1.3m(잠정치) 이동하는 등 이시카와현 주변 지역에서 상당히 큰 지각 변동이 관측됐다고 밝혔다.




나나오=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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