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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빼돌렸지만 제품개발 실패…대법 “업체 처벌못해”

입력 | 2024-01-03 07:19:00


상대 기업의 핵심 인력을 채용해 기술을 탈취하려는 시도가 미수에 그쳤다면 해당 업체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해 12월 14일 이탈리아 화장품 기업 인터코스코리아의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위반 혐의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으로 환송한다고 3일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에는 구 부정경쟁방지법 제19조 양벌규정의 적용대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A 씨는 한국콜마에서 2008~2017년까지 근무하며 화장품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색조연구소 기반연구팀 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2018년 인터코스코리아로 이직한 뒤 한국콜마가 개발한 자외선 차단제 핵심 기술을 빼내 제품을 생산하거나 생산하려고 한 혐의로 기소됐다.

B 씨 역시 2007~2012년까지 한국콜마에 근무한 후 2018년 인터코스코리아로 이직했고, 한국콜마의 핵심 기술과 영업비밀 자료를 빼낸 혐의를 받는다.

이와 더불어 인터코스코리아 역시 함께 기소됐다. 법인 임직원이 위반행위를 하면 해당 법인도 함께 처벌하는 ‘구 부정경쟁방지법 제19조 양벌규정’에 따라 인터코스코리아 법인도 함께 기소된 것이다.

1심에서는 A 씨에게 징역 10개월, B 씨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인터코스코리아 법인에는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파일들 모두 한국콜마의 영업비밀로 중요한 자산으로 인정할 수 있다”며 “A 씨가 한국콜마의 다른 직원을 통해 해당 범행을 저지른 점까지 보태어 보면 인터코스코리아가 A 씨의 범행에 관해 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심에서도 일부 항소를 받아들였지만, A 씨와 B 씨에 대한 형량은 바뀌지 않았다. 인터코스코리아는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보다 두 배 늘어난 벌금 1000만 원으로 상향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A 씨가 9개의 영업비밀 파일을 열람하고, 그 영업비밀을 이용해 인터코스코리아의 화장품을 개발하려고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인터코스코리아가 A 씨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다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은 인터코스코리아의 상고를 받아들여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19조는 ‘법인의 대표자나 법인 또는 개인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 등이 해당 법인 또는 개인의 업무에 관해 제18조 제1항부터 제4항까지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위반행위를 하면 그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 또는 개인에게도 해당 조문의 벌금형을 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해당 양벌규정은 영업비밀 부정 사용에 대한 미수범을 처벌하는 제18조의2에 해당하는 이번 사건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부정경쟁방지법 제19조는 사용인 등이 영업비밀의 취득 및 부정 사용에 해당하는 제18조 제1항부터 제4항까지의 위반행위를 한 경우에 적용될 뿐”이라며 “미수범을 처벌하는 제18조의2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터코스코리아의 사용인 A 씨가 한국콜마의 영업비밀을 부정 사용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쟁점 공소사실에 대해 구 부정경쟁방지법 제19조의 양벌규정을 적용해 인터코스코리아를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원심판결 중 인터코스코리아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A 씨의 상고는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