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5일 미 의회 청문회에서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이 참석해 학내 반유대주의 논란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반(反) 유대주의와 표절 논란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왔던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이 결국 사임했다. 미 월가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인 기부자들과 진보 성향의 대학 지도부의 갈등이 대학가를 휩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현지시간) 게이는 총장은 이날 하버드 커뮤니티에 보낸 서한에서 자신의 사임 결정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며 “(하버드) 법인 구성원들과 상의한 결과, 제가 사임하는 것이 하버드에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11명으로 구성된 하버드 대학 이사회도 이날 이메일 성명에서 게이의 사임을 “슬픔에 잠긴 채” 받아들였으며 앨런 가버 최고학술책임자가 임시 총장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의회 청문회에서 ‘유대인 학살을 요구하는 것이 학생들의 행동강령에 위반되는지 예 아니오로 답해달라’는 공화당 소속 엘리스 스테파닉 하원의원의 질문에 게이 총장과 매길 총장, 샐리 콘불루스 MIT 총장은 “상황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고 모호하게 답해 논란을 불렀다. 특히 거액 기부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자 매길 총장은 사퇴했고, 게이 총장도 사퇴 압력을 받았지만 하버드대 이사회는 게이 총장을 지지한다고 밝히며 외부 압력에 버티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게이 총장 반대파에 의해 여러차례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결국 이날 자진 사임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표절 논란이 게이 총장 사퇴의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이는 오랫동안 응축된 보수적 기부자들과 진보적 아이비리그 대학 간 갈등이 표출된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대학 기부자들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사태 때와는 다른 하버드대 지도부의 미적지근한 움직임에 반발해 왔다. 이에 더해 지난달 의회 청문회 이후 미 의회 70여 명 의원들도 게이 총장의 사퇴 서명 운동에 사인하는 등 정계에서도 논란이 거셌다.
뉴욕타임스(NYT)는 “큰 손 기부자들이 게이 총장의 발언과 하마스 사태에 대한 대응에 반발했고, 11월 조기전형 지원자가 17% 감소해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문제가 지속되자 결국 이사회도 사임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보도했다. 하버드대는 미국 대학 중 최대 규모인 507억 달러(66조5000억 원) 기부금을 기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미국 대학 총장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기부금 확보로 꼽힌다.
게이 총장 사퇴에 따라 유명 벤처 투자자 샘 레신 등은 소셜미디어에 “결국 사퇴를 보게되어 기쁘다”고 밝히는 등 기부자나 동문들은 환영의 뜻을 표했다. 반면 진보 단체를 중심으로 첫 하버드대 흑인총장으로 상징성이 높았던 게이 총장의 사임에 반발하고 있다. 게이 총장이 “(반유대주의 논란 이후) 개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비난이 컸다”고 밝히기도 해 향후 캠퍼스 문화전쟁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도 높은 상태다. 인권단체 내셔널 액션네트워크 대표인 알 샤프턴 목사는 NYT에 “다양성, 형평성에 대한 공격”이라며 게이 총장 사퇴를 주도한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회장 집무실 밖에서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