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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 서서 독도 일출을 보다[청계천 옆 사진관]

입력 | 2024-01-03 16:24:00


울릉도에서 바라본 동해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며 우리 영토 독도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울릉도-독도-태양이 일직선에 위치하는 시기는 2월과 10월 중 며칠에 불과한데, 2023년 10월 30일에 90여Km 떨어진 서도를 해발 272m에서 1200mm 초망원 렌즈로 포착했다. 외로운 섬을 품고 떠오르는 붉은 태양처럼 갑진년 평화로운 세상을 품을 수 있는 해가 되길 소망한다. 

2023년 10월 25일.

새벽에 눈을 떴다. 오랜만에 장거리 출장이라 억지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직전에 본 유튜브 영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울릉도에 입도해서 열흘에 걸쳐 촬영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이걸 보고 나니 내가 독도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른 새벽에 눈은 떴지만 무거워진 마음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후포항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기 위해서는 늦어도 6시까지 도착해야 했다. 카메라 기본 장비와 1200mm, 800mm 초망원 렌즈, 트라이포드 2개, 옷가지 등을 넣었더니 취재차에 빈자리 없어 보였다.

울릉도는 여행을 목적으로하는 외지인들을 빨아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는 섬이다. 작년 여름에는 개인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그 돈이면 차라리 동남아에 가지 왜 굳이 울릉도를 가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의견도 일정 부문 수긍이 가는 점도 있지만 나 홀로 이 섬을 찾았을 때 느꼈던 감흥을 가족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울릉도에서 독도 일출을 관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린 권오철 작가의 영상은 한동안 이슈의 중심에 있었다. 사진기자면 누구나 욕심을 낼법한 매력적인 소재였다. 쉽지는 않겠지만 한번쯤 시도해 보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때마침 울릉도로 휴가를 간다는 얘기를 들은 데스크 선배가 ‘(울릉도에)간 김에’ 독도 일출을 찍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카메라를 든 삶은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하다. 좋은 발제는 거부할 수 없는 법. 무작정 놀 생각만 했는데 역시 데스크(취재 지시를 내리는 선임)는 다르다. 관련 내용을 조사해 보니 1년 중 2월 또는 10월의 단 며칠 동안 독도의 일출 촬영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사정이 있어서 “이번에는 못 찍겠는데요”라고 보고했더니 “그럼 언제 찍을 수 있는지 알아봐라”는 대답이 왔다. 역시 데스크는 포기란 걸 몰랐다.

권오철 작가가 “삼각함수를 계산해 몇 년의 시도를 끝에….”라고 했던 뉴스 인터뷰가 떠올랐다. 삼각함수? 나는 ‘수포자’다. 수학은 중학교 1학년 때 교집합 단원에서 수학 진도는 멈췄다. ‘몸으로 때우는 방법이 있을 거야….’라는 근자감을 바탕으로 검색 신공을 발휘했다. 결국 해와 달의 일출 각도를 날짜별로 예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냈다.

“10월 말쯤 되겠네요” 그렇게 데스크 보고를 마친 뒤 두어 달이 지나서 마침내 ‘그날’이 도래하고 있었다. 내겐 딱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실패해도 경험은 남을 거라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울릉도 입도를 감행했다.

이 시기에 울릉도와 독도,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기간은 열흘에서 보름 남짓에 불과하다. 촬영 포인트를 잡기 위해 지도를 보고 적당한 높이의 지형을 찾아봤다. 울릉도에서 87.4km(기점 바위 기준)나 떨어져 있는 독도를 눈으로 보기 위해서는 되도록 높은 곳으로 올라야 한다. 지구가 둥근 탓에 평지에서는 독도를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와 도보로 사람이 오를 수 있는 포인트가 서너 곳 예상됐다. 계획대로라면 내겐 총 네 번의 촬영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2일 차, 민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10월 26일, 입도 2일 차 새벽. 울릉도 남쪽의 꽤 높은 곳에 있는 민가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해가 떠오르는 위치가 남쪽으로 점점 내려가기 때문에 촬영 위치는 반대로 매일 북쪽으로 조금씩 이동해야 한다. 독도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수평선에 구름이 짙게 끼어 있어서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독도의 위치라도 파악해야 마음이 편할 텐데 답답했다. ‘쉽진 않겠구나…’. 크루즈선이 기적 소리를 내며 사동항으로 입항하고 있었다.

3일 차, 리조트로 이동. 역시 구름이 짙게 끼어 독도의 위치 조차 가늠되지 않았다.

27일, 3일 차 새벽. 한 리조트에서 조망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날 봤던 구름 띠가 아직 걷히지 않았다. 리조트 직원은 날씨만 좋다면 휴대전화로도 독도와 일출을 촬영할 수 있다며 며칠 전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태양과 독도가 좀 떨어져 있었지만 분명 한 프레임에 담겨 있었다.

4일 차, 10월 28일에 첫 포착 된 독도와 둥근 태양.

그간의 피로를 날려버리는 독도와 일출.


28일, 4일 차 새벽. 가파른 길을 따라 차를 몰고 이름도 모르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이제부터는 도보로 산길을 탔다. 등산 가방에 초망원 렌즈 두 개와 기타 장비를 쑤셔 넣고 보니 이건 보통 무게가 아니었다. 군대에서의 완전 군장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수준이었다.

가느다란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느린 걸음으로 30분가량 풀숲을 헤치며 오르고 보니 전망대 데크가 보였다. 멀리 보이는 구름층이 어제 보다 두꺼워 보였다. ‘오늘도 안 되겠구나….’. 아직 자고 있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산만한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어둠 사이를 뚫고 들려오는 바람 소리를 혼자서 버티기엔 사실 무서웠다. 빠른 성공은 빠른 복귀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내도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여보, 오늘도 안 되겠어.”.

이왕 올라온 김에 구름 위로 해가 떠오르는 것 만이라도 보자는 생각에 차가운 바닥에 앉아 한참을 통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이 걷혔다. 태양이 구름 띠를 증발시켰나 보다. 흥분과 동시에 급히 전화를 끊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정확히 일직선이 되지는 않았지만, 독도의 한참 왼쪽에서 뜨는 태양을 가로 앵글로 잡기에 괜찮았다. 오히려 분위기 있어 보였다. 나흘간 쌓였던 부담감과 피로가 한 번에 씻겨 내려갔다. 올라갈 때는 그렇게 힘들었던 산길을 콧노래를 부르며 순식간에 내려왔다.

이정호 소장이 안내한 포인트는 차량으로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낙엽과 계곡물로 인해 미끄러운 탓에 새벽에 접근하기 위험한 위치였다. 결국 하룻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하산해 결과물을 확인하고 나니 ‘기본은 했으니, 이틀만 더 있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오후 귀인을 만났다. 전날 촬영 장비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신형 카메라와 구형 망원렌즈를 연결해 줄 컨버터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두 세트의 장비를 챙겨오긴 했지만, 영상까지 찍기 위해서는 컨버터가 필요했다. 울릉군청과 울릉도 오픈채팅방을 수소문하다가 이정호 세종독도연구소장이 곧 울릉도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 사정을 이야기하니 마침 본인에게 컨버터가 있다며 흔쾌히 도움을 주셨다. 이미 사진부 선배들과도 인연이 깊었던 이 소장은 14년간 울릉도와 독도의 다양한 모습을 촬영해 온 사진작가로 울릉도에서는 VIP 대우를 받는 몇 안 되는 외지인 중 한명 이었다.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 울릉천국 등 울릉도 곳곳에는 이 소장의 작품이 걸려 있다.

이정호 소장은 독도 일출을 기록하기 위해 해마다 이 시기에 울릉도를 찾는다. 카메라를 든 두 사람의 목적이 같기에 이후 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4륜구동 차량으로 좁고 가파른 길을 한참 오르니 분지가 나왔다. 일반인은 접근하기 힘든 이곳은 소장만이 알고 있는 주요 포인트 중 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차박을 하며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이정호 소장으로 부터 컨버터를 빌려 영상 촬영을 시도했다. 독도는 보였지만 일출은 관측되지 않았다.

춥고 배고픈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을 맞았다. 이제는 두꺼운 구름띠를 보는 것이 익숙해졌을 정도로 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흐릿하게 보이는 독도로 위안을 삼으며 5일 차를 맞았다. 다음 날 새벽 한 번 더 시도하고 정오에 배를 타야 한다. 전문가와 함께해도 실패하니 이틀 전 전망대에서의 성공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 새벽이 밝았다. 아니, 초겨울 새벽이 그리 밝을 리가 없다. 비교적 접근이 쉬운 언덕길을 포인트로 잡았다. 이 소장에게서 빌린 컨버터를 카메라에 물리고 동영상 촬영 준비를 마쳤지만 기대는 없었다.

6일 차, 두 번째 포착 된 일출. 운이 좋게도 독도와 태양이 가운데로 정렬이 됐다.


점차 날이 밝아오는데 그동안 지겹게 따라다니던 구름 띠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하는 생각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저 멀리, 너무도 선명하게 붉은 태양이 보였다.

바다 너머에서 뜨고 지는 태양은 언제 바라봐도 경이롭다. 태양이 머리를 살짝 들이밀자, 그 오른쪽에 엄지손가락 모양의 촛대바위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엄지척’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독도의 서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메라에서 한쪽 눈을 떼지 않은 채 이정호 소장이 축하인사를 건넸다. 선명하게 두 눈으로 보이는, 일본과의 영토 분쟁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찍고 나서야 눈을 떼니 눈앞이, 바다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있건 말건 태양은 솟아오른다. 우리의 독도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 인간들끼리 호들갑을 떨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섬이 대한민국 영토임은 논쟁할 가치도 없다.


국방부는 최근 발간한 장병 정신교육 자료에서 독도를 센카쿠 열도, 쿠릴열도와 함께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인 지역으로 기술하고, 다수의 한반도 지도에 독도를 누락하는 등 ‘독도와 관련한 영토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뿐더러 스스로 논란거리를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게다가 일본 기상청은 독도를 자국 영토로 표시해 지진 해일 특보를 발령하면서 우리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우기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자국 영토에서 두 다리를 땅에 딛은 채 독도의 아침해를 본 적이 있는지. 대한민국에서는 그 장관을 누구나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