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아닌 타국서 요인 암살은 처음 하마스-헤즈볼라 동시 “보복” 천명 중동전쟁 전선 확대 우려 커져
숨진 하마스 간부, 지난해 이란 최고지도자 면담 배석 2일 이스라엘의 무인기 공격으로 레바논에서 숨진 하마스 고위 간부 살레흐 알 아루리(오른쪽)의 생전 모습. 그는 지난해 6월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운데)와 이란 테헤란을 찾아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만났다. 사진 출처 이란 최고지도자실 홈페이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3인자인 살레흐 알 아루리가 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외곽에서 이스라엘의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숨졌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근거지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아닌 타국에서 활동 중인 하마스 간부를 제거한 것은 처음이다. 하마스는 즉각 “이스라엘과 진행 중인 휴전 협정을 중단하겠다”며 보복을 천명했다.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이며 하마스를 지지하는 헤즈볼라,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모두 후원하는 이란 또한 보복을 거론해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경 이스라엘 무인기가 베이루트 남부 외곽의 하마스 사무실을 공격해 아루리 등 6명이 사망했다.
아루리는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부관으로 하니예, 이번 전쟁을 주도한 군사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에 이은 하마스 서열 3위로 꼽힌다. 그는 그간 레바논에 머물며 하마스와 헤즈볼라 사이에서 연락책 역할을 해 왔다. 이로 인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전부터 그를 제거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다만 마크 레게브 이스라엘 총리실 외신대변인은 MSNBC 인터뷰에서 “이번 공습을 누가 행했건 하마스에 불만을 품은 쪽일 것”이라고만 했다. 자국의 아루리 제거 여부를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이다.
레바논에 기반을 둔 헤즈볼라 또한 “처벌 없이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저항 세력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고 있다”며 복수를 다짐했다.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지도자는 그간 “이스라엘이 레바논 내 팔레스타인 지도자를 공격하면 보복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감안할 때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영토 곳곳을 미사일, 로켓 등으로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이란 또한 외교부 성명을 통해 “아루리를 암살한 시오니즘 정권(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에 다시 불이 붙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는 이스라엘이 레바논 주권을 침해한 만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긴급 항의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앞으로 몇 주에 걸쳐 가자지구에서 5개 여단, 수천 명의 병력을 철수하기로 하는 등 저강도 작전으로의 전환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이번 공습 결과 레바논 등으로 전선이 확대되는 위험에 처하게 됐다.
중동 전쟁의 장기화를 바라지 않는 미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민간인 희생을 줄이기 위해 이스라엘에 저강도 작전을 종용하는 와중에 확전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외교 치적이 절실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그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교전 중단을 위해 물밑에서 공을 들여 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다음 주 초 이스라엘을 비롯한 몇몇 중동 국가를 방문한다. 당초 이번 주 방문하려다 한 차례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