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인사 앞둬 더 늘어날 듯 “항소심 일은 많은데 보상 미비” 법조계 “승진 등 대책 마련 필요”
동아DB
다음 달 전국 법원 정기인사를 앞두고 핵심 인력인 ‘고법 판사’(고등법원 판사)들이 연이어 사의를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법원의 최우선 과제로 지목했지만 이를 구현할 핵심 인력이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다음 달 예정된 정기인사를 앞두고 최근까지 서울고법에서만 10명 안팎의 판사가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중순까지 퇴직 신청이 가능한 만큼 고법 판사들의 사직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서울고법 근무 연한인 5년을 채우고 지방근무를 해야 하는 사법연수원 33, 34기 판사들의 사직이 이어지고 있다. 경력 15년 이상 판사 중에서 선발하는 고법 판사는 미래의 대법관 후보군이 될 핵심 자원이다.
고법 판사들의 줄사표는 항소심 재판의 업무 강도가 높은 데 비해 보상이나 승진 기회가 적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과거엔 능력을 인정받은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하고, 이후엔 지법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주요 법무법인들도 고법 판사를 적극 스카우트하고 있다. 고법 부장판사와 달리 별도의 취업제한 규정이 없는 데다 법원이 검증한 젊은 실무 인력이라는 ‘보증’이 붙기 때문이다. 2012∼2015년 연간 1, 2명 선이었던 고법 판사 퇴직자는 김 전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인 2018년(8명)부터 꾸준히 늘어 2021년 9명, 2022년 13명, 지난해 15명으로 늘어났다. 한 수도권 고법 부장판사는 “고법 판사들이 일단 대형 로펌 취업 문을 두드린 뒤 채용이 안 되면 다시 재판을 하고, 이듬해에 다시 취업 문을 두드리는 식”이라며 “이미 마음이 뜬 상태에서 하는 재판이 신뢰를 줄 수 있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법원 내부에선 승진 기회 및 보상 확대 등을 통해 핵심 인력 유출을 방지할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고법 판사는 “각 지방의 항소심을 전담하는 항소법원을 마련하거나 연수 및 성과급 체계를 정비하는 등 법원 내 승진 및 보상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