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日 강진에 고립된 마을, 비에 산사태까지… “대피소 식량 곧 바닥”

입력 | 2024-01-04 03:00:00

강진 덮친 노토반도 르포
취재차량 현장 가는중 1m 바위 ‘쿵’
건물 잔해에 우회도로 진입 막히고… 기상악화 탓 해안-상공 접근도 난항
사망자 73명으로… 연락두절 60명



日 지진 70여명 사망… 무너진 지붕 위로 탈출 3일 일본 이시카와현 스즈시 도심에서 한 여성이 지진으로 폭삭 주저앉은 가옥의 기와지붕 위를 위태롭게 빠져나오고 있다. 이틀 전 스즈시를 강타한 규모 7.6의 강진으로 도심 6000여 가구 중 5000여 가구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일본 전체에서 이날 오후 6시 현재 73명이 목숨을 잃었고, 여진이 끊이지 않는 데다 폭우와 산사태까지 겹쳐 구조 및 복구 작업이 상당히 더딘 상태다. 스즈=AP 뉴시스


아나미즈=이상훈 특파원 

“속보입니다. 진도 5강(强)의 지진이 다시 발생했습니다.”

3일 오전 10시 54분경 일본 서부 이시카와(石川)현 노토(能登)반도의 중부 아나미즈(穴水)정. 지진해일(쓰나미) 피해 지역인 스즈(珠洲)시로 향하던 자동차가 갑자기 높은 파도를 만난 배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1일부터 이어지던 여진이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10초도 안 돼 차에 켜둔 NHK 라디오에서 지진 경보가 흘러나왔다. 거북이걸음으로 서행하던 주변 차량 운전자들은 사색이 된 채 핸들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

3일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아나미즈(穴水)정의 한 도로가 지진으로 갈라지면서 그 틈새에 차량이 끼어 있다. 주민 일부는 도로 파손으로 고립되기도 했다. 아나미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인근 국도에서는 더욱 아찔한 순간을 마주했다.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터널 앞에서 지진 여파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지름 1m짜리 커다란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산사태가 벌어졌다. 앞서 달리던 자동차는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면 생명마저 위험할 상황이었다.

3일 일본 이시카와현 스즈시로 향하는 국도 터널 앞에 산사태로 거대한 바위가 떨어져 있다. 지진으로 지반이 약해진 데다 비가 내리면서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아나미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자동차를 이용해 돌아본 노토반도의 강진 피해 지역은 진앙 가까이로 갈수록 참혹한 광경이 잦아졌다. 1일 규모 7.6의 강진으로 수많은 집이 무너졌고, 도로 곳곳이 끊겨 있었다. 몇몇 고립된 마을은 전기와 수도 공급이 끊긴 채 피해 상황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지진에 비까지 겹쳐 산사태 곳곳

3일 일본 이시카와현 아나미즈정에서 주택이 무너져 지붕이 내려앉았다. 지붕 밑에 흰색 자동차가 깔려 있다. 아나미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이날 오후 아나미즈정에 도착하자 스마트폰에선 안테나 표시가 사라지며 연결이 끊겼다. 통신망에도 문제가 생긴 것이다. 국도변 휴게소에선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다. 요시무라 고키(吉村光輝) 아나미즈정장은 NHK와 만나 “기지국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휴대전화 연결이 사흘째 끊겼다. 우리도 정확한 정보를 발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3일 일본 이시카와현 아나미즈정에서 자동차가 무너진 가옥에 깔려 있다. 아나미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노토반도 중심부에 있는 아나미즈정은 지진 사망자가 가장 많은 와지마(輪島)시와 스즈시를 가기 위해선 받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고속도로 통행이 금지되며 2차로 국도에는 일반 차량은 물론 경찰 구조대와 자위대 차량, 물자 지원 트럭 등이 뒤엉켜 교통 체증이 심각했다. 우회도로 대부분은 건물이 무너지며 가로막힌 상태. 마을에서 만난 70대 남성은 “주민들은 거의 초등학교 대피소로 갔다. 나도 피난소에서 이틀째 머물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가장 피해가 큰 스즈시 등은 사실상 고립 상태에 빠졌다. 특히 지진으로 흔들리며 지반이 약해진 데다, 비까지 내려 산사태의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는 “배로 구호물자를 보내겠다”고 했지만 쓰나미로 수심이 달라져 배가 해안에 접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스즈시 관계자는 “짙은 구름이 끼고 비가 오는 바람에 헬리콥터도 접근이 여의치 않다”며 “시 전체가 괴멸 수준이다. 별도 지원이 없으면 일부 대피소는 당장 내일부터 물과 식량이 바닥날 것”이라고 전했다.




● “도로 끊기고 집 무너져 갈 곳 없어”

지진 피해 3일째인 이날 구조대원들은 스즈(珠洲)시에서 고립된 주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무너진 집들을 샅샅이 수색했다. 스즈=AP 뉴시스 

이시카와현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망자는 3일 오후 6시 기준 73명으로 늘어났다. 노토반도에서 연락이 두절된 약 60명은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스즈시 측은 “구조 요청이 왔지만 불가항력으로 대응할 수 없는 건수도 72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3일 일본 이시카와현 아나미즈정 바닷가의 한 주택이 지진으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아나미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와지마시의 한 남성은 “갈 곳이 없다. 급한 대로 자동차와 비닐하우스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와지마시와 스즈시는 전기, 수도가 끊겨 자위대 급수차가 배급하는 비상용 물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것마저 받지 못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즈미야 마스히로(泉谷満寿裕) 스즈시장은 현 대책 회의에서 “무사한 집이 없다. 시내 6000가구 중 5000가구는 생활할 수 없는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3일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아나미즈정의 무너진 가옥 앞을 한 행인이 걸어가고 있다. 아나미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이날 강진 피해자 구조 작업과 관련해 “지진 발생 뒤 40시간 이상 경과한 시점”이라며 “피해자 구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는 “구조가 필요한 피해자가 약 130건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접수되지 않은 피해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3일 일본 이시카와현 아나미즈정에서 한 자동차가 지진으로 쩍 갈라진 도로를 지나가고 있다. 아나미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1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와지마시에서는 관광 명소인 ‘아사이치’ 새벽시장 점포와 주택 등 200동 이상이 불에 탔다. 사흘째인 이날까지도 불길은 완전히 잡히지 않았다. 스즈시 주민들은 “지진해일로 시청 인근 주택가 도로까지 작은 배들이 올라왔다”고 전했다. 물이 역류하며 마을 곳곳에선 바닷물과 하수도 냄새가 섞인 역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고 한다.



아나미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